“모두 제 잘못이에요”… 폭력피해 아이들 17%, 자신 탓으로 생각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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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기획/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학대에 ‘순응’하는 빈곤층 아동

“저는 쓸데없이 태어났어요. 저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야 한대요. 모두 제 잘못이에요.”

아버지에게 수시로 폭행당했던 민우(10)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다. 몇 해 전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랑 살면서 아버지의 폭력에서는 벗어났지만, 이제는 지독한 가난에 시달린다. 최근 월세가 밀려 집에서 쫓겨날 상황이 되자 어머니는 민우에게 “너만 없었으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민우는 어머니가 자기를 버릴까 봐 모든 게 자신 탓이란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빈곤 아동들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는 비율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자존감 역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복지기관 ‘부스러기사랑나눔회’가 최근 수도권 4곳의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빈곤 아동 7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왜 부모가 때린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13명(17.6%)은 “내가 말을 듣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2014년 보건복지부의 ‘아동권리인식조사’에서는 참여 아동의 1.6%가 “부모의 학대 이유는 자녀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한 것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다.

학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아동의 30%가 ‘소리나 고함을 지르는 것’ ‘혼자 집에 있게 하는 것’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히는 것’은 “학대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어린이들이 언어 및 정서적 폭력과 방임에 익숙하다는 걸 보여준다.

실제로 빈곤과 아동학대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복지부의 ‘2014년 전국 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정의 23.3%가 기초생활수급가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2.6%였다.

또 이 기관이 아동복지 관련 실무자 339명을 대상으로 아동학대의 주된 원인을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45%가 ‘극심한 경제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답했다(복수 응답).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빈곤한 부모는 자신감이 결여돼 있고 신체적, 정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아이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3월 29일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학대의 주된 원인 중 하나인 ‘빈곤’에 대해선 별다른 내용이 없다. 강명순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이사장은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선 빈곤 부모 및 아동에게 특화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학대#빈곤층#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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