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인터넷 만담가 전성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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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오피니언팀장
이진 오피니언팀장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옆자리 아이가 키득키득 웃었다. 뭔가 싶어 넘겨다보니, 그럼 그렇지,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 무슨 게임인지 화면은 한창 움직이고 중계하는 아나운서가 내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폰 밖으로 흘러나온다. 하지만 고개를 모로 해 보는 것만으로는 아이의 웃음에 끼어들 수가 없다. 화면 한구석에 표시된 ‘afreeca TV’라는 글자만 머릿속에 남았다.

자리를 잡고 나서 검색해 보았다. 주로 개인들이 만든 방송을 인터넷으로 내보내는 관문이었다. 코스닥시장에서 거래되는 업체니까 나름의 공신력도 있어 보인다. 후배 기자는 다양한 내용 중에서도 BJ들이 진행하는 방송이 인기라고 알려준다. BJ? DJ는 디스크자키, VJ는 비디오자키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BJ는 뭔가? 브로드캐스팅자키(Broadcasting Jockey)의 줄임말로 ‘개인방송 진행자’라는 것이다.

BJ들은 게임을 재미있고 실감나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게임의 고수이거나 게임 본래 스토리와 상관없는 상황극을 즉석에서 만들 정도로 입심이 좋아야 인기를 얻고 베스트 BJ에 오를 수 있다. 자신이 직접 화면에 나와 이야기를 주도하는 BJ들도 있다. 대체로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거나 외모가 눈길을 끄는 여성 BJ들이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시청자들과 바로 눈앞에서 마주한 듯 자연스럽게 말하고 채팅에 대꾸한다. afreeca TV에서는 김이브 박현서 윰댕 엣지가 ‘4대 여신(女神)’으로 꼽힌다. 팬클럽만 수십 개에 이르고 팬덤 파워가 유명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다. 한 40대 초반 남성은 야근할 때면 김이브 방송을 켜놓는다고 했다. 인기가 치솟자 MBC는 최근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BJ 방식을 그대로 끌어왔다.

BJ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와 웹카메라, 마이크 정도가 창업(?)에 필요한 장비의 전부다. 자격증도, 별다른 학력도 필요 없어 진입장벽이 아주 낮다. 탈북녀 BJ도 활동 중이다. 단, 말솜씨와 순발력은 스스로 갖춰야 한다. 일부 BJ는 연간 수입이 수억 원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시청자들이 사서 선물한 별풍선을 BJ가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 수익모델이다. 별풍선은 살 때는 개당 110원, BJ가 환전할 때는 개당 60, 70원이다. 2년 전 한 여성 BJ가 하룻밤 새 1200만 원 가까운 돈을 벌었다. 이 BJ에게 마음이 흔들린 남성 시청자들이 별풍선 십몇만 개를 한꺼번에 몰아준 덕분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말만 잘하면 큰돈을 벌 수 있으니 BJ가 꿈이라는 중고교생도 줄을 섰다.

하지만 BJ들이 하는 말은 나 같은 기성세대가 듣기에 아슬아슬하다. 차분한 어조의 BJ들도 있지만 제한 수위를 넘나드는 욕설과 독설은 물론이고 성(性)과 관련된 비속어가 자주 튀어나온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요설(饒舌)의 범벅이라 할 만하다. TV와 라디오에서 접하기 힘든 날것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현실인 양 춤을 춘다. 역으로 이런 점들이 밋밋한 일상에 싫증난 어린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답답함을 후련하게 풀어버릴 수 있고 눈높이에 맞는 위로를 듣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BJ들은 ‘인터넷 만담가’라고 할 수 있다. 1950∼70년대 청중을 쥐락펴락했던 만담가 듀오 장소팔 고춘자가 인터넷을 만나 부활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게임이건, 여신의 위로건 많은 소재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청소년들이 주로 열광하는 점이 다르다. BJ 현상이 주류 문화까지 파고들 것인가. 아니면 기성세대가 혀를 차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맴돌 것인가. 시간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

이진 오피니언팀장 leej@donga.com
#afreeca TV#BJ#마이 리틀 텔레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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