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천에는 오리가 산다. 나는 돈이 없다” 첫 문장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6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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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김근우 지음/272쪽·1만3000원·나무옆의자

진기한 사람과 동물을 골라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도 아니고, 고양이를 잡아먹는 오리라니 제목만 보고 고개를 갸우뚱. “불광천에는 오리가 산다. 나는 돈이 없다”란 소설 첫 문장을 읽고 또 갸우뚱. 호기심을 자극하니 읽어준다. 그런데 황당한 제목과 대책 없는 첫 문장과 달리 곧 “말 되네”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서울 은평구 불광천이 배경이다. 전 재산이 4264원 밖에 남지 않은 삼류 장르소설 작가와 주식투자 실패로 빈털터리가 된 여자는 일당 5만 원짜리 일감을 불광천변에 사는 노인에게 제안 받는다. 노인이 끔찍이 아끼던 고양이 ‘호순이’가 불광천 오리에게 잡아 먹혔고, 노인은 범인 오리를 찾아 낼 수 있도록 불광천 오리들 사진을 찍어오면 하루 5만 원, 산 채로 범인 오리를 잡아오면 1000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저자는 오리를 쫓는 노인과 남녀를 소설 ‘모비 딕’에서 흰고래를 잡으러 피쿼드호에 오른 에이해브 선장과 선원들에게 비유하며 오리를 쫓는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노인과 남녀는 좌충우돌하는 운명공동체다. 살아 있을지 모를 ‘진짜 호순이’를 찾아서 노인을 행복하게 해줄지, 노인의 아들 꾐에 빠져 ‘가짜 오리’를 잡아 1000만 원을 받을지 갈등하는 지점이 재밌다. 결말에선 고양이와 오리가 ‘크아아아앙’, ‘꽈아아악’거리며 ‘운명의 일합’을 겨루는 클라이막스(?)도 있다.

읽다보면 요즘 유행어로 ‘츤데레’(겉으로 무뚝뚝하나 속정이 깊은 사람을 뜻하는 일본식 신조어) 같은 매력이 있다. 한없이 가벼운 코미디 같지만 읽다보면 바닥엔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정서가 온돌 바닥처럼 따뜻하다.

소설은 제11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저자는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 신경계 이상으로 다리가 불편했다. 중학교 2학년 땐 학교를 관두고 독학으로 집에서 소설만 썼다. 장르소설 업계에선 1996년 PC통신 게시판에 ‘바람의 마도사’를 연재하며 이름을 날렸다.

소설 속 소설가는 작가와 많이 닮았다. “전인미답의 금맥을 꿈꾸듯 매일 텅 빈 화면에 도전하고 있지만 그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내게 주어진 일과였다. 어차피 평생에 걸쳐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 나의 일과. 숨을 거두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결말을 알게 된들 어떠랴. 어쨌든 쓸 거니까. 계속 쓸 거니까.”

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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