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발언’ 이유 해임된 교수, 법원선 “지나치다”…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2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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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한 대학의 관광영어과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일삼다가 해고된 대학 교수에게 법원이 해임이 지나치다고 판결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에선 “국민 법 감정상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지적과 함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었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 강의실에서 성희롱 발언 일삼은 A 씨


A 씨는 2013년 4월 강의실에서 실전영어 수업 도중 1학년 남학생에게 “나는 큰 가슴을 가진 여자가 오면 흥분된다는 말을 영작해보라”고 했다. 이 남학생이 다소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자 A 씨는 학생에게 “너 고자냐”라고 말했다. 같은 해 실용영작문 시간에는 유일한 남학생에게 “섹시한 여자를 보면 흥분하니?”라고 말해 심적 부담감을 준 점도 징계 이유가 됐다.

같은 해 실용영작문 시간에는 “‘찌찌빠빠’는 (신체에 살이) 찐 곳은 쪘고, 빠진 곳은 빠졌다는 말이다” “몸매가 죽여준다” “미국 여자들은 다 풍만하다. 하지만 한국 여자들은 계란프라이 두 개를 얹고 다닌다” “보이 프렌드는 남녀가 성적인 사이를 말하는 것이다”는 표현 등 학생들이 듣기 불편할 정도로 성과 관련된 표현을 지나치게 많이 한 점도 징계 이유였다.

또 수업 시간에 스타킹 관련 이야기가 나오자 “여자는 팬티스타킹 2호가 예쁘다” “나는 여자들의 브래지어 사이즈도 잘 안다”고 말하고, 생리통을 이유로 결석한 여학생에게는 “내 수업에 빠지려면 달력에 생리주기를 표시하던가 아니면 약을 먹고 생리주기를 바꾸라”고 말해 성적 모멸감을 느끼게 한 것도 징계사유에 포함됐다. 결국 A 씨에 대한 성희롱 관련 민원이 접수됐고, 2013년 8월 학교로부터 해임처분을 받았다. 교원징계위원회에서 총 5표 중 파면 1표, 해임 4표가 나왔다. A 씨는 소청심사위에 구제신청을 냈다가 기각당하자 법원에 소송을 냈다.

○ 1심 법원 “해임 처분은 지나쳐”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이승한)는 A 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해임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A 씨가 발언을 한 사실이 인정되고 수강생 입장에서 보기에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라면서도 “특정인을 대상으로 발언한 게 아니며 신체 접촉도 없었던 점 등을 이유로 해임처분은 지나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 씨가 사용한 수업교재에 일부 성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어 교재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성적인 표현을 과하게 사용한 것으로 강의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개방된 강의실에서 다수의 학생을 상대로 수업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것으로 폐쇄된 장소에서 특정인에게 행해지는 것보다 학생들이 느낄 성적 혐오감이 상대적으로 약했을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 법조계 “민사손해배상 소송이라면 결과 달랐을 것”

이번 판결을 놓고 법조계에는 “법원이 A 씨의 발언과 직무 관련성을 폭넓게 연관지은 것 같다” “국민 법감정이나 정서상으로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처럼 학교나 일터에서 아슬아슬한 성희롱적인 발언이 문제가 되면 법률적으로 어떻게 될까. 성희롱은 성추행과 달리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는 할 수 있지만 가해자를 형사처벌하는 게 쉽지 않다. 때문에 소송 자체는 주로 피해자가 제기하는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가해자해임 처분의 위법성 유무를 다투는 행정소송으로 전개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성희롱 발언으로 피해를 본 학생들이 A 씨를 상대로 민사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희롱 발언으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이 들어온 경우에도 법원은 발언의 맥락, 상황의 특수성, 재판부의 심증에 따라 엇갈린 결론을 내린다. 대표적인 사건이 최근 세간의 관심을 모은 대한항공 전 사무장 B 씨(54)의 해고무효 확인 소송 판결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B 씨는 한 여승무원의 카카오톡 사진을 보고 “(니 사진은) ‘나 오늘 한가해요’ 느낌이 든다. 선데이서울 모델같다”고 말했다. 또 전화를 걸어 “젖은 머리로 나온 걸 보고 방에 돌아와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후배 승무원에게 “피부가 찰지다”며 별명을 ‘찰진’ 으로 불렀다. “속살이 까매 신랑이 좋아하겠어” “저런 사람이 남자 맛을 보면 장난 아니다”는 등 발언도 했다.

또 유아 동반 승객의 우유 제공 요청에 우유가 다 소진됐음을 보고받자 해당 승무원에게 “우유 가져오지 말고 본인 것을 짜드리라”라는 말도 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7월 B 씨를 파면했고, B 씨는 법원에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서울남부지법은 최근 “부하 직원들에게 수년간 성희롱을 하고 상품권과 돈을 요구한 B 씨에 대한 파면 처분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B 씨가 성희롱 발언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선물과 돈을 요구한 점도 해고가 정당했다는 판결이 내려지는 데 주요 요소로 작용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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