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근형]담배 ‘경고 그림’엔 무관심한 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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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 인상만큼 금연효과 큰데… 복지위, 정부법안 논의도 안해
의장 삭제요청에 통과 불투명… ‘국민건강 증진’ 명분 부끄러워

유근형·정책사회부
유근형·정책사회부
여야가 담뱃값 2000원 인상에 잠정 합의해 2일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성인 남성 흡연율(43.7%)을 고려하면 바람직한 일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다. 정치권이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면서까지 담뱃값 인상을 강행하면서도 정작 국민 생활에 별 부담을 주지 않는 ‘경고 그림 삽입’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담뱃갑에 흡연의 폐해와 관련된 경고 그림을 삽입하는 정책은 가격 인상에 맞먹을 정도로 금연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평균 4∼8% 낮춘다면 비가격 규제인 경고 그림 삽입은 2∼10%의 감소 효과가 있다. 국민 저항은 적지만 상당한 금연 효과가 있어 ‘손 안 대고 코 푸는 정책’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로 이 방법은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 담뱃값 인상 논의 과정에서도 경고 그림에 대한 정치권의 무관심은 계속됐다. 정부는 9월 금연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관련 내용을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해당 법안의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이 내용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야당은 ‘담뱃값 인상은 서민 증세’라는 반대 프레임을 내세우며 상임위에서의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천신만고 끝에 경고 그림 삽입이 포함된 건강증진법 개정안은 새해 예산 관련 부수법안에 포함돼 본회의 상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통과될지는 불투명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달 27일 “경고 그림은 예산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관련 법안에서 내용을 빼야 한다. 상임위에서 재논의해 달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를 논의해야 할 복지위는 1일까지 열리지 않았다. ‘경고 그림 삽입’이 포함된 정부안은 우여곡절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 것이다. 하지만 2일 본회의에서 삭제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 복지위 김춘진 위원장,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이명수,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은 국회에서 간담회를 갖고 경고 그림을 추후에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치권이 담뱃세 인상에만 몰두하면서 담뱃값을 올리는 것이 국민 건강 차원이 아닌 우회 증세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세수 확보와 연관 있는 담뱃값 인상에는 적극적이면서 비가격 정책인 경고 그림 삽입은 등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담배업체들의 로비 탓에 정치권이 경고 그림 삽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이번 담뱃값 인상이 세수 확보가 아닌 국민 건강을 위한 일이라는 점을 국회가 명확하게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유근형기자 noel@donga.com
#담뱃값#인상#경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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