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공포정치에서 사상교육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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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현재 북한에서 진행 중인 사태는 ‘새로운 최고지도자의 탄생에 따른 권력 재편성’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후 3년과 그의 사후 계속되는 ‘김정은 체제 형성’이 최후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김정일은 1980년 노동당 대회에서 후계자로 등장해 1994년까지 14년간 북한의 ‘다음 최고지도자’였다. 게다가 김일성 주석 생전에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했다. 권력을 승계했을 때 이미 김정일 체제가 완성돼 있었다.

하지만 준비 기간이 짧은 김정은이 신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선 ‘반당(反黨) 반혁명 종파분자’의 ‘국가전복 음모 행위’가 필요했던 것 같다. 음모 행위는 1956년의 ‘8월 종파 사건’과 결부돼 확대 해석됐다.

젊은 독자는 ‘8월 종파 사건’을 잘 모를 것이다.

그 당시 북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소련(현 러시아)에선 니키타 흐루쇼프 전 공산당 서기장이 스탈린을 비판하고 있었다. 거기에 힘을 얻어 북한 내에서도 연안파의 최창익, 소련파의 박창옥 등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가 김일성 비판에 나섰다.

그 무대가 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8월 전원회의에서 총을 뽑아 반대파를 위협한 인물이 빨치산 시대부터 김일성 전우였고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부친인 최현이었다. 김일성은 그 종파 사건을 진압하고 ‘유일 지도체제’를 구축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장성택의 죄가 당 중앙위원회에서의 김일성 비판에 필적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현재 김정은은 그 역사를 이용해 혁명 혈통과 빨치산의 전통을 강조해 가며 북한에 스스로 ‘유일 지도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장성택 숙청 전에 김정은이 11월 말에 혁명유적지인 삼지연을 방문한 사실을 보도했다. 숙청 후 ‘8월 종파 사건’ 당시 소년 김정일이 혁명유적지 탐사 행군을 거행한 역사적 사실도 분명히 했다. 두 사람의 삼지연 방문을 중첩시킨 것이다.

흥미롭게도 ‘조선노동당 역사’는 그때 노동당은 김일성이 교시(敎示)하는 원칙에 따라 반종파 투쟁을 ‘소수 악질분자들은 치고 그 밖의 사람들은 교양(敎養)개조하는 방향에서 진행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교양개조’는 ‘사상교육’을 의미한다.

이번에도 장성택 처형이라는 공포정치 후에 오는 것은 “우리는 김정은 동지밖에 모른다!”는 전인민의 사상교육 운동일 것이다. 장성택의 추종자들은 그 과정에서 비판을 받고 내년 3, 4월 개최되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첨언하자면 그 후 김일성은 12월 전원총회에서 자력갱생의 방침에 따라 증산, 절약운동 전개를 결정했다. 그게 ‘천리마운동’이라고 불리는 대중 동원 경제건설운동의 단초가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리마운동’을 전개할 리가 없다. 장성택 숙청 준비가 진행되던 11월 하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3개의 경제개발구 설치에 관한 정치명령을 발표하고 대외경제 협력사업과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박봉주 총리가 경제 부흥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 부흥이 우선되는 한 대외 도발은 한계가 있다. 김정은이 다시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하면 남북대화 단절과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가 뒤따를 것이고 북-중 관계가 악화돼 북한의 경제 회복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이 유연한 노선을 채택해도 사상교육과 경제개혁의 병진(竝進)이 성공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병진에 실패했을 때 김정은은 다시 강경노선으로 회귀할 것이다. 진짜 위기가 있다고 한다면 그 위기는 수년 후 나타날 것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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