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원재]‘취임 100일 성과’ 조급증 청와대 정책 발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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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정치부 기자
장원재 정치부 기자
21일 오전 9시 20분경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한 신문에 실린 ‘신용불량자 대사면’ 기사와 관련해 “오늘 금융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간 금융위 담당자는 발표 여부를 묻는 출입기자들에게 “오늘은 절대 아니다. 나를 믿어도 좋다”고 정반대로 말했다.

이후 청와대의 뜻이 전달되자 무안해진 금융위는 부랴부랴 발표를 서둘렀고 결국 이날 오후 2시 반 ‘외환위기 당시 연대보증채무자 지원 방안’이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솔직하게 “우리(청와대)가 좀 빨리 하라고 (금융위를) 재촉했다”고 털어놨다.

부정확한 보도가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청와대의 우려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금융위와 사전협의를 거쳤다면 금융권에서 ‘청와대가 등 떠밀기 식으로 발표를 밀어붙였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와 충분한 협의 없이 청와대가 앞서 나간 사례는 이 밖에도 적지 않다.

통상임금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에서 해외 기업인에게 “꼭 풀어 나가겠다”고 말한 뒤 국내에서 이슈화됐다. 고용노동부는 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개성공단 회담 제의를 지시하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던 통일부가 태도를 바꿔 대화를 제의한 것도 국민에게는 ‘엇박자’로 비쳤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취임 100일(6월 4일)을 앞둔 박 대통령과 참모들이 조급증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선인 시절 “3개월, 6개월 안에 (공약 이행을) 거의 다 하겠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고 말했던 박 대통령이 마음먹은 대로 속도가 나지 않자 답답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두르는 것과 성과를 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Haste makes waste)’는 영어 속담이 있다. 100일을 맞는 박근혜정부가 5년 뒤 성공한 정부로 기억되기 위해 되새겨야 할 말이다.

장원재 정치부 기자 peacechaos@donga.com
#청와대 정책#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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