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포스코빌딩엔 커피향보다 진한 향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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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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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4층 카페오아시아에서 반 말리 씨와 런 시니쓰 씨, 남 안티카 씨(오른쪽부터)가 포스코의 한 외국인 직원으로부터 주문을 받으며 커피를 내리고 있다. 뒤쪽은 이 카페의 유일한 한국인 직원인 백미현 씨.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3월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4층 카페오아시아에서 반 말리 씨와 런 시니쓰 씨, 남 안티카 씨(오른쪽부터)가 포스코의 한 외국인 직원으로부터 주문을 받으며 커피를 내리고 있다. 뒤쪽은 이 카페의 유일한 한국인 직원인 백미현 씨.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아메리카노 석 잔 주이소.”
“네? 석 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석 잔이 뭐예요?”
고객은 그제야 웃으며 손가락 세 개를 펴들었다.
“아! 세 잔! 미안해요.”

태국 출신인 남 안티카 씨(35·여)는 이럴 때마다 참 난감하다. 한국생활이 벌써 6년째지만 아직도 한국어는 어렵다. ‘조금 연하게’ ‘아주 뜨겁지 않게’ ‘약간 덜 달게’ 같은 주문은 늘 헛갈린다. 까칠한 고객이라도 만나면 당황스러워 카운터 앞에 서기조차 두려워진다.

한눈팔 틈도 없다. 줄을 선 고객이 벌써 예닐곱 명이다. 안티카 씨는 밝은 미소로 다음 고객을 맞는다. “안녕해요. 뭐 드려요?”

○ 맛으로 승부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빌딩 4층의 직원 휴식공간 내 ‘카페오아시아(Cafe-O-Asia·‘O’는 모두가 하나라는 의미)’. 2월 18일 정식으로 문을 연 이 카페가 입소문을 타면서 포스코 직원들의 명소가 됐다. 카페오아시아는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후 2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은 1호 사회적 협동조합(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이다.

직영 1호점의 직원은 모두 4명이다. 안티카 씨와 캄보디아에서 온 반 말리 씨(27)는 작년 12월 시험 오픈할 때부터 일한 창립 멤버다. 캄보디아 출신 인턴사원 런 시니쓰 씨(23)는 출근한 지 꼭 2주일째라고 했다. 이들은 모두 한국인과 결혼해 고향을 떠나온 결혼이주여성이다. 그리고 이들의 든든한 ‘왕언니’ 백미현 씨(41)가 카페 운영을 돕고 있다.

커피값은 싸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 1500원이다. 포스코가 임대료를 받지 않아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저가(低價)로 승부하는 것은 아니다. 백 씨는 “기본은 커피맛”이라며 “가장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로스팅 방법을 연구한 끝에 최근에는 ‘오아시아 블렌딩’까지 개발했다”고 강조했다.

카페오아시아의 단골이 된 손창우 포스코 경영진단실 매니저(35)는 “사회공헌이라는 좋은 취지도 있지만 커피맛이 좋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 도시락 토크의 기적

대치동 1호점에는 하루 평균 500여 명이 찾는다. 대부분 포스코 직원이다. 하루 매출액은 120만∼130만 원에 이른다. 설립 초기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한 큰돈이다. 백 씨는 그 원동력을 ‘팀워크의 회복’에서 찾았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커피매장에서 언어 장벽은 큰 걸림돌이었다. 한국어를 조금씩 한다지만 의사소통은 쉽지 않았다. 하고 싶은 얘기도 속 시원히 할 수 없었다. 안티카 씨와 말리 씨는 2월 오픈을 앞두고 크게 싸우기도 했다. 일이 고르게 배분되지 않았다는 오해 때문이었다. 감정이 격해진 둘은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 “향수병 다 치료됐어요” ▼

백 씨가 나서 겨우 진정시켰지만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문제였다. 어색한 분위기를 ‘도시락’으로 풀어보기로 하고 모국(母國) 전통음식을 하나씩 싸오자고 제안했다. 이튿날 그들은 한국 태국 캄보디아 음식을 한 상에 차려놓고 서로 “맛있다”고 칭찬했다. 한국 남자들에 대한 불만도 상 위에 올렸다. 남편들을 흉보면서 어느덧 오해는 하나둘 풀렸다. 손짓 발짓 섞인 ‘어눌한 수다’를 떨며 이들은 새로운 단어 하나를 배웠다. ‘정(情)’이었다.

○ 외로움을 날려버리다

이들 다문화 여성은 출근시간이 제각각이다. 자녀가 없는 막내 시니쓰 씨는 오전 7시 50분까지 출근해 8시 오픈을 준비한다. 안티카 씨는 8시 반, 말리 씨는 9시 반에 나온다. 각각 어린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온다. 말리 씨는 늦게 출근하는 대신 가장 늦게까지 남아 정리한다. 카페에서 일하면서부터 이들은 활력을 되찾았다.

“일을 시작했어요. 향…, 향기? 향수? 아! 향수가(향수병이) 다 없어졌어요.”(안티카 씨)

말리 씨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게 올해 목표다. 그리고 쿠키 만드는 법도 배울 작정이다. 곧 정식 직원이 될 시니쓰 씨는 “실수부터 줄여야 한다”며 웃었다.

카페오아시아는 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포스코 P&S타워 21층에 직영 2호점을 연다. 이달 중순과 다음 달 초에는 인천 연수구와 경기 광명시에 가맹점도 낼 예정이다. 백 씨는 “카페오아시아에 떡, 샌드위치, 식자재를 공급하는 곳도 모두 사회적 기업”이라며 “올해 가맹점을 10개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다문화#포스코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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