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완준]우문 국회, 우답 장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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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정치부 기자
윤완준 정치부 기자
한미동맹은 한국의 국가안보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소중한 파트너다. 군사동맹 측면에서는 미국이 1등, 경제교역 규모에서는 중국이 1등이다. 그러나 한미관계, 한중관계 전체에 순위를 매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외교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베테랑 외교관 출신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이런 미묘한 외교 현실을 모를 리 없다. 그는 28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외교력을 기울여야 하는 국가별 우선순위와 그 이유’에 대한 국회의 질의를 받았다. 윤 후보자는 서면답변에서 “미국은 최우선 외교파트너, 중국은 미국 다음”이라고 밝혔다. 일본과 러시아는 중국보다 나중에 서술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러시아의 서열을 매긴 셈이 됐다. 언론도 그렇게 보도했다.

개인에게도 ‘친한 친구 서열을 매겨보라’는 질문은 무례하다. ‘너는 나의 두 번째 친한 친구’라는 말을 들어서 기분 좋은 사람이 있을까. 따라서 국회의 ‘국가별 우선순위’ 질문은 ‘우문(愚問)’이었다. 이에 외교 경험 많은 윤 후보자는 ‘현답(賢答)’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그 역시 질문에 말려든 ‘우답(愚答)’을 내놓고 말았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안보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주변국들의 협력은 절실하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와 머리를 맞대 20년의 북한 비핵화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반성하고 패러다임을 대전환시킬 공동의 묘책을 짜낼 시간이다. 균형정책을 표방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국의 기대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이기도 하다. 이런 때에 “중국은 두 번째 친한 친구야”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어떤 실익이 있는지 궁금하다.

윤 후보자가 총지휘한 박근혜 정부 외교의 국정과제 중 하나가 ‘한미동맹과 한중 동반자관계의 조화와 발전 및 한일관계 안정화’다. 박근혜 정부가 북핵 6자회담의 대안으로 추진하는 한미중 전략대화의 성사를 위해서라도 미중 사이의 균형정책이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서울 프로세스)’의 성패는 중국과 일본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윤 후보자는 28일 청문회에서 “외교에 랭킹을 매기는 건 적절하지 않다. 취지에 맞지 않게 답변 자료가 작성됐다”고 해명하며 진땀을 흘렸다. 윤 후보자는 여당인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의 지적을 가슴 깊이 새기길 바란다.

“외교부 수장의 한마디는 대통령의 한마디다. 국가별 우선순위는 너무나 치명적인 실수였다.”

윤완준 정치부 기자 zeitung@donga.com
#한미동맹#윤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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