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인학]중소기업의 피터팬 신드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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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KOTRA가 발표한 ‘주요 국가들의 중견기업 현황 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기업 중 중견기업 비중은 0.04%로 경쟁국과 비교해 매우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견기업은 축구로 치면 미드필더다. 미드필더가 공격과 수비의 주축인 것처럼 경제에서 중견기업은 자원의 선순환과 산업 경쟁력 향상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경제의 허리 격인 중견기업군이 약하면 대기업 중심의 수출이 늘어도 소재와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해야 하며, 부가가치는 누수되고 소득 및 일자리 유발의 낙수효과는 감소한다.

중견기업 되면 혜택 줄고 규제 늘어

기업생태계 측면에서 보면 문제는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중견기업 비중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중소기업 비중은 지나치게 높고, 대기업 비중은 매우 낮은 것이 더 큰 문제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지적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대기업이 많을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제조업만 보면 종업원 500인 이상을 고용한 대기업은 한국은 인구 1만 명당 0.07개로 일본의 절반, 독일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반면에 종업원 50인 미만의 소기업은 1만 명당 9.7개로 일본(5.8개)과 독일(7.1개)에 비해서도 많다. 이렇게 소규모 기업에 편중된 우리나라 기업규모 분포는 재정위기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에 버금가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중소기업은 과밀하고 대기업은 희소한 상태에서 또 다른 문제는 기업의 성장판이 막혔다는 점이다. 즉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고, 갈수록 대기업의 수는 줄고 중소기업 비중은 늘어나는 추세다. 심지어 성장 여력이 충분한 중소기업조차 성장을 기피하거나, 회사를 쪼개 일부를 해외에 이전하는 방법으로 성장을 은폐하는 현상, 이른바 ‘중소기업 피터팬 신드롬’도 퍼져 있다. 중소기업을 두텁게 지원·보호하는 정부 정책이 성공한 결과, 일부 중소기업은 정책 지원의 온실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중견기업이 되면 중소기업 때 받던 지원혜택 160개가 사라지고 대기업 규제만 늘어난다. 누가 중견기업을 하겠느냐”고 하던 어느 기업인의 한탄은 우리나라 기업생태계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을 말해준다.

기업인이 기업을 키울수록 후회가 되는 제도적 환경이 계속되는 한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경제가 재도약하고 청년들이 원하는 질 좋은 일자리가 더 만들어지려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복원이 시급하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중기·중견기업의 육성’을 강조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막혀 있는 기업 성장판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최고 60%에 이르는 기업 상속세율이나 법인세, 연구개발 및 판로 지원, 환경 및 입지 규제 등 관련 제도 중 ‘기업 성장판’을 누르고 있는 불합리한 요소는 없는지 찾아내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성장 돕는 ‘기업생태계’ 복원 급해

그러나 내심 걱정되는 면도 있다. 대통령 당선인이 ‘중소기업 대통령’을 표방한 만큼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확대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중소기업이 중견·대기업과 경쟁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주문이 쇄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게 될 경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는커녕 중견기업의 중소기업 복귀를 부추길 수 있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경쟁은 필요하다. 그 대신 중소기업을 부당하게 힘들게 하는 대기업의 경제력 남용, 불공정 거래 관행을 엄단하는 게 맞다. 또한 중소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는 방안의 일환으로 중소기업에 섞여 있는 좀비 기업을 솎아내는 간벌(間伐) 정책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중소기업#대기업#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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