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명옥]‘짝퉁 비엔날레’는 이제 그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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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한때 미술인들에게 비엔날레는 창조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꿈의 용어였다. 그러나 비엔날레 풍년이라는 9월이 다 지나가는데도 대다수 미술인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엔날레 피로증후군’을 호소하는 미술인이 늘어났다. ‘무늬만 비엔날레’가 전국 각지에서 경쟁적으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품질미달 전시회 전국서 봇물

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열리는 기획전과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비엔날레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예술가들이 작품성을 검증받는 미술 올림픽, 문화적 담론을 생산하는 창의공장, 현대미술의 새로운 동향을 제시하는 길라잡이 역할로 각인되었다. 또 국가나 지자체의 문화지수를 높이거나 개최도시를 홍보하는 고품격 문화관광 상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비엔날레 중에서 이를 제대로 살려 운영하는 곳이 과연 몇 개나 될까. 실제로는 이름만 그럴듯하지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의 세금이 낭비되는 ‘짝퉁 비엔날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품질 미달이 많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꼽을 수 있겠다.

첫째, 비엔날레를 최신 예술 트렌드인 양 착각하는 일부 지자체장의 전시행정과 그런 거품심리를 이용하는 철새 기획자들과의 결합이다. 철새들은 “비엔날레를 따라하지 않으면 문화예술도 모르는 무식쟁이라는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도시의 문화수준을 높일 것을 요구하는 여론에 부응하고 지역민들의 환심도 살 수 있는 최상의 축제”라고 권한다. 두 번째 이유는 문화적 열등감이다. 대규모의 국제 미술행사를 열기만 하면 세계미술계와 교류할 수 있고 이것이 미술 한류가 되겠거니 하는 기대심리 말이다.

문제는 미술계 내에서 이런 비판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도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극소수의 미술전문가를 제외한 일반인들은 난해한 현대미술을 평가할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있지 않다. 전시장 안을 미아처럼 헤매는 관람객들은 무언가에 속은 듯한 실망스러운 표정이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미술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떤 잣대로 전시 수준을 평가할 수 있으며 설령 알고 있더라도 무슨 배짱으로 전시회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자칫 목소리를 냈다가는 현란한 미술전문용어를 구사하는 전시 기획자로부터 고상한 예술도 이해하지 못하는 미술문맹이라고 공격을 받게 될 터이니 말이다.

전문가들도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 공개 비난은 삼간다. 비엔날레의 주역인 전시감독이나 기획자들은 이런저런 전시 개막식이나 세미나, 워크숍, 모임 등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낯익은 얼굴이기 때문이다. 비전문가들은 전문적 안목이 부족하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미술인들은 몸을 사리니 비엔날레의 성과를 엄정하게 평가하기란 힘들다.

자, 이제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공적인 비엔날레를 치를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비엔날레를 기획하고 있는 지자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준비해야만 한다.

혈세낭비-국가이미지 떨어뜨려

국제 미술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시설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가. 미술인, 대학, 기업, 시민단체와의 긴밀한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지역민의 축제로 확대시킬 수 있는가. 비엔날레 후광효과, 즉 비엔날레로 인한 지역산업 활성화를 꾀할 수 있는가. 세계적인 수준의 작가들을 섭외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진 글로벌 기획자를 영입할 수 있는가. 세계미술계를 움직이는 파워 인사(작가, 비평가, 컬렉터, 저널리스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면 ‘비엔날레여! 안녕’이라고 말해야 한다. 예술의 독창성을 갉아먹는 ‘짝퉁 비엔날레’는 혈세 낭비와 국가 브랜드 가치를 하락시킨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비엔날레#미술인#미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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