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광기]누가 ‘콜로라도의 악마’를 키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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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저자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저자
여름철 최고 휴양지로 꼽히는 미국 콜로라도 주는 지금 완전히 공황 상태다.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상영되던 덴버 시 바로 옆 위성도시 오로라 시 영화관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다. 오로라 시는 주민의 90%가 미국의 전형적 백인들이 모여 사는 부자동네다. 미국 국토의 중심부에 있어 동서로 이동하기도 좋고 연중무휴 날씨가 좋아 고급 휴양지로 꼽힌다. 치안이 좋기로도 유명한 동네다.

美 풍요속 잉태된 폭력의 씨앗

그래서인지 이번 사건으로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이전에 발생했던 총기난사 사건 때보다 더 큰 것 같아 보인다. 상식적으로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곳과 사람에 의한 범행이었기 때문이다. 범인은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24세 백인 청년이다. 범행은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이나 속도위반으로 티켓 한 번 받은 것을 빼고는 전과가 전혀 없고 박사과정을 다니다 그만둔 이력만 봐서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평범한 수재다.

지금 미국 사회는 “폭력과 거리가 먼 동네에서, 그리고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에 의해 어떻게 이런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이 자행되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악마가 나왔을까”의 질문들을 되뇌며 침통하게 해답을 찾고 있다.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적인 답을 당장 이끌어낼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해서 미국 사회가 이런 악마를 키워왔는지에 대한 간접적인 정황을 유추해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주말 CNN은 총기난사가 부모를 동반하면 13세 어린이도 관람할 수 있는 영화관에서 발생했다는 점과 희생자 중 어린이들도 있었다는 점에서 뉴스를 전해 들은 아동들의 심리가 어떨지에 대해 심리학자와 대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앵커는 심리학자에게 이 잔인한 폭력 뉴스를 과연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하는지 물었는데, 심리학자는 “어린이들이 접하는 모든 미디어(만화, TV, 영화 등)의 약 25∼30%가 이미 폭력에 노출된 마당에 무슨 그런 어리석은 질문이 있느냐”고 답해 앵커를 무안하게 했다.

범인이 얼마나 폭력물에 노출되고 탐닉했었는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범인이 배트맨에 광적으로 심취하고 만화 속 악당 ‘조커’처럼 머리를 붉게 염색했고 자신이 ‘조커’라고 외쳤다는 증언이 있다. 범행 당시에도 검은 옷에 전투 헬멧, 마스크, 레깅스 등 영화 속 악당과 비슷한 복장을 했다. 그가 탐닉했던 배트맨 만화에는 극장 안에서 관객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도 나오고, 이번 개봉 영화에도 운동경기장에서의 학살 장면이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범인이 나온 고교 친구의 말을 인용해 “(범인이) 영웅물과 악당을 유독 좋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디어 폭력성 짙은 한국도 위험

한마디로 ‘콜로라도의 악마’는 예술을 빙자하든 단순한 재미를 노렸든 얄팍한 기성세대의 폭력이 깃든 상품과 상술에 의해 키워지고 있었다. 특히 공동체의 결속이 극도로 약화된 미국 사회에서 외로움에 찌든 청소년들이 이런 문화상품의 소비자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악마로 돌변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는 문화상품의 폭력성이 미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한국 사회에도 커다란 함의를 던져준다.

허구는 선인도 악당도 다루기 마련이다. 그러나 잔인한 폭력을 적나라하게 의도적으로 그리고, 무분별하게 조장해서는 안 된다. 또한 기성세대는 악당을 좋아할 수도 있는 몇몇 아이를 선인을 더 좋아할 수 있게 유도해줘야 한다. 즉 악마가 아니라 천사를 닮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어른들의 몫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악마로 가득 찰 것이 뻔하다. 미국의 이번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뼈아픈 교훈이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저자
#시론#김광기#콜로라도 총기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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