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양옥]무상(無償)의 역습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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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무상보육이라는 국가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중단 위기에 빠졌다. 재정자립도가 높고 부유한 지방자치단체인 서울 서초구조차 지원을 중단할 위기에 처하는 등 예산 부족이 심화되자 정부는 현행 전면 지원 방식의 0세부터 2세까지 지원체계를 선별지원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유아 보육비 부담을 덜어주고 저출산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자는 좋은 취지였음에도 재정 상황을 감안한 신중한 검토와 준비가 부족해 결국 중단 위기에 빠진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예산 부족해 낡은 시설에서 수업

우리나라 중학교 의무교육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데 15년 가까이 걸린 이유도 국가 재정상황 때문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무상보육지원 사업도 예산 확보를 우선적으로 해서 재정 건전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게 좋았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러한 교훈은 현재 시행 중인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직선 교육감 취임 2년을 맞아 교총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시교육청 교육예산을 분석했다. 서울교육청의 무상급식 예산은 2010년 172억 원에서 올해 1381억 원으로 2년 만에 8배 넘게 증가했다. 예산 총량은 늘지 않고 새로운 곳에 예산을 몰아 쓰니 기존에 쓰던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폭 깎인 게 바로 학교교육시설 환경개선 예산이었다. 과학실 강당 체육관 등 학교 기타 시설 증축 예산과 화장실 탈의실 등 교육환경개선 예산은 아직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은 추경안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2010년 추경예산 대비 무려 2026억 원이 삭감되었다. 전면 무상급식에 따라 학교시설, 교육환경개선 예산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청결한 화장실, 좋은 교육환경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제공해야함에도 학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예민한 아이들은 청결하지 않은 학교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 변비가 생긴다고 하소연하는 상황도 있다. 화장실 급식실 과학실 음악실 놀이시설 등이 고장 나고 노후했음에도 교체 또는 신설되지 않아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결한 경우가 많다. 남녀 중고교 공학에서 꼭 필요한 탈의실이 없는 학교가 전국에 37%나 된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에게 필요한 샤워실은 엄두도 못 낸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과 복지예산에 이어 국가예산의 두 번째를 차지하는 교육예산 투자(연간 40조 원)가 무색할 지경이다. ‘무상급식’은 당장 학부모나 학생들이 체감하고 잘 드러나는, 금방 생색이 나는 반면 정작 학생들의 교육에 필요한 교육환경 업그레이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거나 잘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크다. 연간 7조 원이 넘는 서울 교육예산 중 약 70%가 교사 교직원 임금 등 인건비 예산이라고 한다면 사업비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30%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전면 무상급식에 ‘다걸기(올인)’하듯 예산을 썼으니 교육환경시설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무상이 부르는 禍, 자식세대가 질것

게다가 요즘 식료품 가격 상승에 따라 급식의 질이 낮아져 입맛 까다로운 아이들은 급식을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전면 무상급식에 따른 재정 부담이 지속되어 교육시설, 환경예산 확보가 어려워져 불결한 화장실, 교실과 복도에서의 급식을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제공해야 할지 모른다.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상이라는 이름의 포퓰리즘 정책은 우리나라와 교육정책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치의 각성과 함께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 절실히 요구된다. ‘무상(無償)의 역습’이 부르는 화(禍)는 고스란히 우리 자식 세대가 질 것이기 때문이다.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무상보육#예산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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