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케빈 러드]내일의 ‘팍스 파시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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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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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러드 호주 외교장관·전 총리
케빈 러드 호주 외교장관·전 총리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아시아의 앞날에 매우 중요하긴 하다. 그렇다고 중국과 미국이 아시아에 양대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시아에서는 주요 2개국(G2) 개념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우선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과 맞먹는 규모다. 중국은 한참 뒤처진다. 일본은 여전히 세계 3대 경제대국이고, 인도 한국 인도네시아 호주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개혁 개방정책에도 적극적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호주는 특히 한국과의 FTA를 시작으로 중국 인도 일본과도 협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하와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아태지역 내 경제적 기회를 도모하자는 뜻이 반영됐다.

글로벌 관점에서 아시아의 경제적 역동성은 인상적이다. 30년 전만 해도 글로벌 GDP에서 아시아의 비중은 20%도 안 됐다. 당시 미국의 비중은 30%나 됐다. 하지만 앞으로 5년 내 아시아의 GDP는 세계 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미국은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반도, 남중국해, 대만, 태국과 캄보디아 등 지역 내 영유권 분쟁이 우려된다. 아시아는 21세기 글로벌 경제의 희망이지만 19세기에 조성된 영토 및 안보 갈등이 핸디캡이 될 수도 있다. 일부 분쟁은 본질적으로 내부적인 문제지만 다루기 힘든 지역 문제에 대해 공동의 방향성을 마련하여 아시아 전체의 이익을 도모할 수도 있다.

더욱이 아시아는 경제 개방을 확대하는 것을 포함해 민주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또 이 지역 국가들은 외부 간섭에 대항할 주권의 중요성도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과 미국의 양극체제로의 재편은 원하지 않는다. 그 대안으로 태평양지역 국가들은 개별적인 안보문제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협조체계 마련과 기구 설립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다른 기대와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을까. 이념적 갈등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미래를 맞는 것은 아닐까. 중국과 미국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여기진 않는다. 두 나라의 충돌은 모든 지역의 이해와도 어긋난다.

완전하진 않지만 올바른 방향의 첫 시도는 주요 20개국(G20) 체제의 출범이었다. 중국 인도 한국 인도네시아 호주 일본은 글로벌 금융규제와 재정 불균형, 경기 침체 등을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앉았다. 중국은 이 포럼에서 중요하고도 건설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사실 중국 없이 세계 경제가 최근의 위기로부터 이토록 빠르게 회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은 세계 질서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라 불리는 국가들과 협력함으로써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분투해왔다. 그러나 아시아의 정치적 도전을 풀어가기 위한 공공의 토론장에서 미국을 배제할 수는 없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저서 ‘중국 이야기’에서 환태평양 국가의 발전을 논했다. 그는 2011년 중국과 미국, 기타 주요 국가들이 인도네시아 발리에 모였던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아시아의 미래를 위한 공통된 비전을 구축하기 시작한, 역사적 기회였다는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공동안보 원칙에 굳건하게 기반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파워를 인정하되 두 나라의 관계가 악화된다 하더라도 나머지 지역이 후폭풍에 시달리지 않도록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후대 역사가들이 ‘팍스 파시피카(Pax Pacifica)’라 부를 태평양 주도의 평화 말이다.

케빈 러드 호주 외교장관·전 총리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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