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채미옥]하회-양동마을 이대로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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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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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옥 국토연구원 문화국토전략센터 소장
채미옥 국토연구원 문화국토전략센터 소장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쾌보를 접한 지 1년여가 지났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단위 문화재가 아닌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살아온 동성마을이며,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5세기 넘게 살아온 마을이다.

두 마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관광객이 증가하는 등 활기가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회마을보다 대비책 마련 시간이 부족했던 양동마을의 경우 마을 방문객을 반갑게 맞아 주던 고택 주인들이 집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관광객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다. 관광객 증가와 함께 조용하던 마을에 상점이 늘어나면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수입을 올리려는 주민과 양반마을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는 주민이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마을의 자존감이 상처를 입고 공동체 규범이 흔들릴 경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관광상업마을로 변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마을 상당수가 지나친 관광상업화로 마을의 고유한 문화적 가치가 상실되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 리장(麗江)도 관광객 증가와 상업화로 고유의 문화적 가치가 감소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두 마을을 지속 가능한 역사마을로 보존하면서 관광경쟁력을 유지하는 핵심은 씨족 공동체 규범과 주민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마을의 정신적 지주가 돼 온 가문은 물론이고 외지에 나가 있는 후손들도 돌아와 가문의 전통을 지켜 나가고 싶은 곳으로 남아야 한다. 대대로 유지돼 온 마을의 전통문화를 관광객의 일회성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싸구려 관광자원으로 내모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관광객의 수요에 맞는 관광이 아닌 마을 특성에 맞는 관광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여러 번 방문해야 마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무분별한 입장 수요를 조절하도록 일정 수준의 체계화된 입장료를 부담시키고, 하루 동안 마을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과 방문할 수 있는 곳을 정해 순번제로 제공하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마을 안팎의 무분별한 상업기능 확산을 방지하고, 음식점 등을 마을기업 형태로 운영함으로써 주민 간 갈등 소지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관광객에게 음식을 팔아 수입을 올리는 것보다는 마을의 전통문화와 정신적 자긍심을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순번제로 개방하는 고택 주인으로부터 가훈, 가문 내력, 관혼상제 예법 등을 접하도록 한다면 마을을 지켜 온 정신적 지주들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할 수 있고, 관광객은 흔히 접할 수 없는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외국 귀빈들의 소규모 회의장으로 활용해 품격 있는 전통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장소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양동과 하회는 정부 지원 없이 가문이 지켜낸 역사마을이다. 수백 년 이어온 공동체 규범이 살아 있는 두 마을은 가 보고 싶은 마을이 아니라 살아 보고 싶은 전통마을로 남아야 한다. 이를 통해 제2, 제3의 전통마을이 자생적으로 살아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자기 지역의 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런 세계문화유산 등재 열기는 지속될 필요가 있다. 개발 지향적인 토지 이용의 틀을 바로잡고 국토의 문화적 품격을 높여 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미옥 국토연구원 문화국토전략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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