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이 한번의 키스를 위해 그는 몇번이나 울었던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프로야구 MVP 윤석민

“혼자 잘해서는 받을 수 없는 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부모님, 코칭스태프, 동료들…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KIA 윤석민은 수상 소감을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다. 개표하는 동안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정규시즌에 거둔 성적이 워낙 발군이었기 때문이다.

윤석민은 올 시즌 다승(17승), 평균자책(2.45), 탈삼진(178개), 승률(0.773) 1위였다. 1989∼1991년 해태 선동열(현 KIA 감독) 이후 20년 만에 나온 투수 4관왕이다. 엄밀히 말해 탈삼진 부문은 1993년부터 시상했기에 트리플 크라운(다승, 평균자책, 탈삼진)을 포함해 투수 부문 공식 4관왕은 그가 사상 처음이다.

윤석민은 성적에 걸맞게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 시상식에서 취재 기자단의 총 91표 중 62표를 얻어 삼성 오승환(19표)과 최형우(8표), 롯데 이대호(2표)를 제치고 올 시즌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 지난주 오승환이 팀 후배 최형우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최형우와 오승환의 표를 합쳐도 윤석민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과적으로 오승환의 예상치 못한 행동은 본인과 최형우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05년 데뷔한 윤석민은 지난해까지 주목할 만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2007년 붙박이 선발로 나섰지만 그가 등판할 때마다 타선은 침묵했다. 평균자책은 3.78로 나쁘지 않았지만 18패(7승)로 그해 최다 패전 투수가 됐다. ‘불운한 투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2008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14승 5패)를 챙겼지만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지난해도 불운의 연속이었다. 강판한 뒤 팀이 역전패하자 주먹으로 더그아웃 문을 때려 오른 손가락이 부러져 한동안 출전하지 못했다. 돌아온 뒤에도 투구 실수로 롯데 조성환의 머리를 맞힌 뒤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은 충격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다행히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호투하며 자신감을 찾은 게 올 시즌 도약의 발판이 됐다. 윤석민은 “최근 2년간 성적이 좋지 않았고 안 좋은 일까지 저질러 야구는 나와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자리에 서게 돼 울컥했다”며 눈시울을 붉힌 이유를 밝혔다.

윤석민은 “다른 MVP 경쟁자들을 압도적인 표 차로 따돌릴 것을 예상했는가”라는 질문에 “시즌이 끝나고 나서는 자신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각종 기사를 보다 보니 불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자해소동을 겪고 올 시즌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에 대해서는 “올 시즌에는 각오가 남달랐다. 팬들로부터 에이스란 소리를 듣는 게 부끄러웠다. 이를 악물고 던졌는데, 이런 좋은 성적이 나서 기쁘다”고 밝혔다.

윤석민은 미국 진출을 겨냥해 메이저리그 거물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와 올 시즌 도중 계약했다.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 선수인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가 보라스의 고객이고 추신수(클리블랜드)도 그렇다. 윤석민은 올해까지 7년을 뛰었기에 구단의 허락이 있으면 비공개 경쟁 입찰을 거쳐 해외에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구단이 반대하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을 때까지 2년을 기다려야 한다. 윤석민은 “구단과 아직 논의한 적이 없다. KIA에 남는다면 선동열 감독님이 좋은 투수로 키워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화기애애 MVP후보들… 사퇴했던 오승환은 심기불편? 7일 열린 프로야구 시상식 직전 사진기자들이 KIA 윤석민(오른쪽)과 삼성 최형우(왼쪽에서 두 번째)에게 악수하는 포즈를 요청하자 

롯데 이대호(가운데)가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두 눈을 감은 채 두 선수가 맞잡은 손을 떼 내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이때 삼성

 오승환(왼쪽)은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임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photolim@donga.com
화기애애 MVP후보들… 사퇴했던 오승환은 심기불편? 7일 열린 프로야구 시상식 직전 사진기자들이 KIA 윤석민(오른쪽)과 삼성 최형우(왼쪽에서 두 번째)에게 악수하는 포즈를 요청하자 롯데 이대호(가운데)가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두 눈을 감은 채 두 선수가 맞잡은 손을 떼 내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이때 삼성 오승환(왼쪽)은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임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photolim@donga.com
▼ ‘중고 신인’ 신인왕 배영섭“故 장효조 감독님 그립습니다” ▼

신인왕에 선정된 삼성 배영섭은 “너무 기뻤지만 긴장한 때문인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photolim@donga.com
신인왕에 선정된 삼성 배영섭은 “너무 기뻤지만 긴장한 때문인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photolim@donga.com
“고 장효조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안 좋을 때마다 좋은 가르침을 주셨는데 이젠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 같네요.” 입단 3년차로 중고 신인인 삼성 외야수 배영섭(25)은 신인왕 수상자로 결정된 뒤 연신 “고맙다”며 주변에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야 할 사람이 참 많았다. 부모님, 감독, 코치, 선수단에 이어 수상 확정 후 꽃다발을 건네준 경쟁자 LG 임찬규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렇지만 가장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던 사람은 올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의 배영섭이지만 그라운드에만 서면 활력이 넘친다. 장 감독은 그런 그에게 항상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했다. 배영섭은 2009년 입단하자마자 오른 어깨 수술을 받는 바람에 1년 넘게 재활에 집중해야 했다. 지난해에도 주로 2군에 머물렀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였다. 1군에 올라온 올해 그는 단숨에 톱타자 자리를 꿰찼다. 타율 0.294에 2홈런, 24타점을 기록하며 팀공격을 이끌었다. 도루도 33개나 성공했다. 정규 시즌 막판 왼 손등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결승타를 치며 우승에도 기여했다. 배영섭은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있지만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목표로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