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옥표]이혼잡지까지 등장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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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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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옥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장 문화인류학
문옥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장 문화인류학
서구 사회와 달리 동아시아 사회들은 현대화의 과정 속에서도 가족원들의 유대가 개인의 심리적 안정 및 전반적인 사회 통합에 중요한 기반으로 기여해 왔다. 나아가 교육이나 직업 등 세속적인 성취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며 사회 발전, 경제 발전에도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중진국들의 변화는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와 이념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혼인율의 점증적 저하, 만혼 혹은 독신의 증가, 세계 최저를 다투는 급격한 출산율의 저하, 이혼율의 급증 등이 그러하다. 이혼을 다루는 전문잡지까지 나온다고 한다.

우리보다 일찍 도시화, 산업화를 경험한 서구 사회는 1970, 80년대에 이미 고이혼율의 단계를 지났으며, 많은 사람이 결혼이 아닌 동거를 선택하거나 독신을 유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혼율이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지속적인 부부관계보다 파트너를 바꿔가며 살아가는 소위 연속적 단혼제(serial monogamy)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최근 변화는 전 세계적인 흐름의 일부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그러한 변화는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은 그중에서도 그 속도와 정도에서 두드러진다.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적 인식과 사회경제적인 변화 사이의 간격이 특별히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결혼은 과거처럼 지속적이고 친숙하며 중층적인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결합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도시화로 인하여 개인은 공동체적 지역사회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사회문화적 연결망은 단편적인 관계들로 해체되고 개인 중심으로 바뀌고 있으며, 핵가족 중심의 현대사회에서 결혼 생활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완충기제들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말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가난했던 과거에 출산율이 더 높았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설득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혼율이 증가하는 것이 과거에 비해 오늘날 결혼하는 사람들이 더 견디기 어려운 불만을 갖게 되기 때문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최근의 변화를 가족의 중요성이 약화되고 있다거나 개인의 윤리나 가치관이 해체되는 현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가족이 사회의 변화, 여성이 당면하게 되는 삶의 변화에 부응하여 변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 최저의 출산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의 이혼율 등과 같은 현상적인 통계수치에 대한 단순한 우려보다는 그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는가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즉 어떻게 성 역할 관념이나 가족관계 같은 문화의 영역과 급격한 사회경제 환경 변화 사이의 불일치 문제를 해소하여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도록 가족 친화적인 복지제도나 사회제도를 확립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대 간, 계층 간의 차이다. 오늘날 지식과 정보와 삶의 조건들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젊은이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며 사는 삶을 그들의 부모 세대와 같이 당연한 삶의 과정이자 행복하고 보람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 우리가 냉철하게 논의해야 할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도 물론 특정 계층의 이야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결혼이나 이혼의 의미나 원인은 계층에 따라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문옥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장 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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