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20선]<6>해삼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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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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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삼의 눈/쓰루미 요시유키 지음·경덕 옮김/뿌리와이파리

《“채취, 가공, 그리고 조리하는 세 과정이 해삼 문화의 요소다. (…) 노동과 기술이라는 점에서 보면 해삼 문화의 세 요소 가운데 가공과 조리의 비중이 크다. 채취하는 것보다 그 후의 작업에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 작업에 대해 모르면 해삼의 수수께끼에 도달할 수 없다.”》

말린 해삼에 담긴 교류史


극피(棘皮)동물인 해삼은 불가사리나 성게가 그렇듯 눈이 없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은 무슨 뜻을 담았을까. 저자는 “이 책은 해삼과 인간 족의 교류사다. 해삼과 인간이 서로 응시하듯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을까”라고 말한다.

저자는 ‘아시아와 일본인’ ‘말라카 이야기’ ‘바나나와 일본인’ 등의 책을 써온 문명교류 전문가. 스스로 ‘내 시야를 열대 아시아와 아이누까지 넓혀준 것이 해삼’이라고 말한다.

왜 해삼일까. 첫째, 해삼은 열대에서부터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대부분의 바다에서 잡힌다. 처음 해삼을 먹은 인류는 오늘날의 함경도 일대에 살았던 구석기인으로 추정된다. 둘째, 해삼은 말리면 무게가 95%까지 줄어든다. 마른 상태에선 쉬 상하지 않으므로 교역품목으로 좋다. 셋째, 말린 해삼을 다시 불려 먹는 곳은 중국뿐이다.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태평양의 숱한 나라와 지역들에서 생산된 말린 해삼이 중국으로 유입됐다.

한마디로 해삼의 길을 따라가면 ‘허브(중심)’와 ‘외곽’의 교류사를 추적하기 쉽다는 설명이다. ‘해삼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역사상 중국의 부(富)가 얼마나 강력한 힘으로 주변 국가들을 흡입했는가를 알 수 있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 초기의 일본은 비단을 대량 소비했다. 그러나 당시 비단은 중국에서 수입해야 했다. 일본은 비단을 얻기 위해 금, 은을 수출했지만 곧 소진됐다. 지배층은 상어지느러미, 전복 등 해산물 수출에 눈을 돌렸다.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 것이 해삼이었다.

19세기 중반 태평양에서는 제국주의의 영토 재분할이 시작됐다. 신흥강국 독일은 미크로네시아 지역으로 관심을 돌렸다. 헬른스하임 등의 상사가 팔라우를 비롯해 각지에 영업소를 열었다. 가장 교역량이 많은 상품은 해삼이었다. 건해삼을 만드는 데는 해삼 자체보다 땔감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피지 섬 해삼산업의 호황기엔 7년 동안 50만 세제곱피트의 나무가 연기로 사라졌다.

이 같은 분석을 통해 저자는 “서구세력의 유입과 함께 근대적 국제교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라는 통념이 도전한다. 해삼은 이미 서구가 아시아에 들어오기 전부터 세계적 시장 시스템에 좌우되는 상품이었다. 이른바 ‘근대적 교역’은 예전부터 면면히 이어지던 인간과 해삼의 교류사에 뒤늦게 편입됐던 것이다.

이상이 책의 줄거리를 이루는 내용이지만 책의 ‘잔가지’를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해삼과 함께 호주의 식민화를 주도했던 상품이 ‘고래’다. 책은 고래뼈로 만든 코르셋을 이야기하며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까지 언급한다. 어떤 해삼은 외부에서 위협이 오면 ‘큐비에 관’이라는 장기를 토해낸다. 끈끈한 내장으로 적을 휘감는 것이다. 일본 신화를 기록한 고지키(古事記)에도 해삼이 등장한다. 한 여신이 물고기를 모아놓고 “따르겠느냐”고 묻는데 해삼만 대답하지 않아 칼에 입을 찢겼다….

이 밖에 가마우지를 이용한 물고기 잡이에서 남방문화의 전달 계통을 추적하고, 전복을 끼우는 꼬챙이의 모양에서 샤머니즘의 영향을 유추해내는 저자의 ‘지적 수다’가 책읽기의 즐거움을 더한다. 이 책은 1990년 신초(新潮) 학예상을 수상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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