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조연환/‘나무는 억울하다’

  • 입력 2004년 6월 28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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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들이 만드는 시원한 그늘이 더욱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지는 시절이다. 삭막하기만 한 콘크리트 빌딩 숲,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를 온몸에 받아 가면서 걷다가 가로수를 만나면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그런데 나무는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입방아에 오르고, 편견과 오해를 받고, 무지에서 오는 욕까지 먹어야 하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소나무는 재목으로서 쓸모가 없다느니 병해충 피해가 심하다느니, 심지어 나라 망칠 수종이라는 말까지 한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백두대간에서 자라는 금강송(흔히 ‘춘양목’이라고도 한다)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곧게 잘 자라며 목재로는 더 없이 훌륭한 재질을 갖추고 있다. 경복궁을 비롯한 문화재 보수 복원에 쓰인 나무가 바로 이 금강송이다. 소나무가 곧게 자라지 못한 것은 소나무 탓이 아니라 제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까시나무는 어떠한가. 보통의 나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산림이 황폐해졌을 때 아까시나무는 뿌리혹박테리아로 공중질소를 고정해 척박한 땅을 비옥하게 하는 데에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5월이면 순백의 꽃으로 산천을 아름답게 수놓고 그 꽃에서 매년 수백억원어치의 꿀을 제공하며 목재는 단단하고 고운 데다 향기까지 있어 아주 값지게 쓰인다. 그런데도 아까시라는 제 이름이 아니라 아카시아라는 남의 이름으로 불릴 뿐 아니라 산림을 망치는 나무라고 잘못 인식돼 있다.

얼마 전에는 플라타너스가 휘발유 승용차보다 대기 중 오존을 10배나 더 발생시킬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만 보면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플라타너스는 모두 베어 내야 할 것이다. 모든 나무는 자라는 과정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배출하는데 그 대표적인 물질이 침엽수는 테르펜류, 활엽수는 이소프렌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소프렌은 일정한 기상조건에서 일부 오존으로 바뀌는 게 사실이나 플라타너스가 방출하는 이소프렌이 모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플라타너스는 오존과 아황산가스, 이산화질소, 이산화탄소 등을 흡수해 준다. 한 그루의 플라타너스는 하루 동안 3, 4명이 숨쉴 수 있는 산소를 공급하며 15평형 에어컨 2∼4대를 약 10시간 동안 가동하는 것과 맞먹는 수분을 방출한다.

억울하기는 숲도 마찬가지다. 숲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체로 1평에 1그루를 심었다가 나무가 자라는 대로 솎아줘 50년 정도가 되면 10평에 1그루 정도만 남겨둬야 한다. 애초에 10평당 1그루를 심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러면 위로 크지 않고 옆으로 퍼져 좋은 목재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1평에 1그루씩 빽빽하게 심어만 놓고 30년이 지나도록 솎아주지 않아 지금 숲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과밀화돼 있다. 숲은 죽겠다고 아우성인데도 사람들은 숲이 울창해졌다고 좋아한다.

하지만 나무는 인간의 무지와 편견과 오해까지 포용하며 제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나무 아래에서 땀을 씻으며 우리는 나무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찌는 듯한 더위가 시작된 거리에서 쉼터를 만들어 주고 있는 플라타너스를 바라보면서 한마디 한다. 나무야 미안하다.

조연환 산림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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