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장수명/‘평준화 연구’ 좀더 과학적으로

  • 입력 2004년 3월 1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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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KDI) 소속 교육개혁연구소의 고교 평준화 관련 연구 결과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KDI가 1일 한국교육개발원(KEDI)과 공동 연구를 통해 평준화 정책을 포함한 교육정책 전반에 관한 포괄적인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KDI가 자료의 처리나 분석과정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로 본다.

그동안 연구기관들은 주요한 교육 쟁점에 대해 체계적인 자료를 수집, 공유하지 않거나 엄밀한 연구 방법을 적용하지도 않았고, 연구 결과도 관련 전문가 집단의 충분한 검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논란거리가 된 KDI 교육개혁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사실 문제가 있었다. “전국 상위 20% 수준의 중학교 졸업생이 1년간만 비평준화지역의 고교에 다니면 상위 10% 수준으로 올라선다”는 취지의 이 연구결과는 사립학교를 평준화에서 해제해야 한다는, 다시 말해 연구자들이 결론에서 제시한 대안을 넘어 공사립 모두 평준화를 해제해야 한다는 정책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평준화 지역의 학부모들은 비평준화 지역으로 자식들을 유학 보내거나 평준화 해제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KDI측이 사용한 연구방법론은 ‘이중차감 방법론’이라는 정책분석 방식이다. 이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자료는 한 모집단에서 2기에 걸쳐 임의로 추출한 횡단자료를 연합하거나 한 모집단에서 임의추출한 동일한 개인들을 2기 이상 추적해 조사한 패널자료여야 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사용한 주 자료는 교육과정평가원이 2001년도 고교 1학년과 2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업성취도 검사다. 이 자료에 이중차감 방법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매우 무리한 가정을 수반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가정은 분석 결과를 크게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KDI 연구자들은 자료나 방법론상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검토나 연구의 한계를 제시하지 않았다.

좀 더 엄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에 KDI가 KEDI와 공동으로 진행하겠다는 평준화 연구도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려되는 점이 있다. KDI는 이번 연구에서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수학능력시험 자료를 이용하며, 연말에 정책대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하지만 한 모집단을 추적하거나 동일 개인을 추적한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관한 자료도 없는 수학능력시험 자료가 평준화 연구에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또 평준화와 같은 주요한 정책에 대한 대안을 올해 안에 내놓겠다는 생각은 출발부터 무리일 수 있다.

평준화 문제는 단 한 번의 연구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과학적 표본에 기초해 적어도 2, 3년에 걸친 장기적이고 다양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평준화 문제에 관해 과학적이고 객관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평준화에 대한 가치판단이 개재되지 않아야 한다. 평준화가 결과적으로 우민화를 초래한, 잘못된 제도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다양한 연구기관이 참여해야 하고, 다양한 연구방법론이 동시에 적용돼야 한다.

장수명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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