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정목/행정수도를 옮기기 전에…

  • 입력 2003년 10월 20일 18시 04분


코멘트
지방분권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국회의 입법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이들 특별법은 우리의 경제 전반, 특히 지방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 이해와 신중한 접근이 특별히 필요하다.

이 가운데 지방분권특별법은 국가업무 가운데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업무는 모두 이양하는 것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의 흐름에 맞는 적절한 입법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현대는 분권화 시대이자 탈권위주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 分權 핵심은 지방 경쟁력키우기 ▼

그런데 무엇 때문에 분권(分權)하는가? 분권이 정의나 민주라서가 아니다. 집권(集權)으로는 더 이상 효율을 추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권한을 행사하되 그 결과에 책임도 지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지방정부가 강화된 경쟁을 통해 번영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분권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의미는 경쟁의 강화다.

바로 이 점에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은 문제가 있다. 이 법은 모든 지역이 고르게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좋은 얘기이긴 하지만, 국가가 위원회를 통해 이를 직접 추구하겠다는 것은 문제다. 왜 그런가.

첫째, 분권의 진정한 의미인 ‘경쟁의 강화’를 희석시키기 때문이다. 국가 위원회가 모든 지역을 잘 살게 해준다고 하면 지방이 무엇 때문에 애써 노력하겠는가.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얻으려는 속성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평범한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둘째, 이 법은 수도권 이외의 지역만을 지방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을 초래한다. 서울은 ‘서울지방경찰청’이란 정부기관의 명칭에서도 분명하듯, 수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의 한 지방이다. 국가균형발전에서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할 이유가 없다.

셋째, 지역간 경제적 불균형은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도 있었다.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방치할 수는 없다. 다만 불균형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경쟁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여야 한다. 중앙정부는 모든 지방이 최선을 다해 경쟁할 수 있는 틀과 규칙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물론 낙후한 지방이 패자부활전을 치르듯 지속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는 있을 것이다.

수도권에 자원이 집중되는 현상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 서울에 행정부가 있기 때문에 수도권 집중 현상이 초래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행정부를 옮길 것이 아니라 없애야 한다. 행정부를 옮기는 곳으로 모든 자원이 다시 집중되는 현상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서울을 중앙집권적으로 확장했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자고나면 무섭게 땅값이 오르고, 각종 공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자본과 노동력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서울이 경쟁 없이 막대한 자원을 획득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 불평등 경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를 그대로 둔 채 행정수도를 건설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할 뿐이다. 누가 봐도 이의가 없는 행정수도의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한 행정수도로 선정되지 못한 지방들의 불만을 달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정부기관을 이전했지만,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지 못한 경험도 참고해야 한다.

▼자원 집중 ‘불평등’부터 해소돼야 ▼

노무현 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르게 지역간 경제적 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현상을 완화하려는 강력한 실천 의지를 표명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다만 분권이 경쟁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것을 간과한 점은 한계다. 분권의 핵심이 경쟁의 강화에 있다는 점에서 경쟁의 틀을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불균형 해소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균형발전은 강화된 경쟁을 통해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 수도권 집중의 완화 역시 불평등 경쟁을 해소하는 방안을 먼저 찾아야 한다. 원칙에 따라 꾸준히 노력하는 것 외에 왕도는 없다.

정정목 청주대 교수·행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