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31>사문탈사

  • 입력 2002년 11월 8일 17시 44분


사문탈사(寺門脫蓑)는 ‘절 문에서 도롱이를 벗다’라는 뜻이다. 도롱이는 물기가 잘 스며들지 않는 띠풀을 엮어 어깨에 둘러쓰던 비옷이다. 눈이나 비가 올 때 이를 두르고 삿갓을 쓰고 나다녔다.

이 그림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가 세밑 어느 눈 오는 날 소 타고 절을 찾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사실은 사천 이병연이 영조 17년(1741) 겨울에 양천 현령으로 있는 겸재에게 보낸 편지가 그림 뒤에 붙어있는 데서 알 수 있다.

“궁하고 병든 몸이라 문안 못 드립니다. 다시 화제(畵題)를 써서 보내드리는데 사문탈사는 형이 익숙한 바입니다. 소를 타고 가신 율곡 고사(故事)의 본시(本試)에 이렇게 읊었습니다. ‘한 해 저물고 눈이 산을 덮는데, 들길은 큰 나무 숲 속으로 나뉘어 간다. 또 사립문 찾아가 늦게 두드리고 읍하여 뵈니….’ 갖춰 쓰지 못하고 보내드리니 살펴보십시오.”

몇 백년이나 묵었을 노거수(老巨樹)가 절 문 앞에 늘어서 있는데 잎 진 가지 위에 눈꽃이 가득 피어있다. 절 문이 행랑채 딸린 재궁(齋宮) 건축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왕릉의 조포사(造泡寺·두부 만드는 절이란 의미로 왕릉 원찰을 일컫는 말)인 것이 분명하다. 당시 서울 주변에 남아있던 대표적 원찰인 뚝섬 봉은사(奉恩寺)가 아닐지 모르겠다.

절 문이나 줄행랑의 지붕 위에도 눈이 가득 쌓여 있고 땅 위에도 눈빛뿐이다. 이렇게 눈빛 일색의 단조로움을 깨뜨리려는 듯 절 집의 벽을 온통 분홍빛으로 칠해놓았다.

절 문 앞 큰길가에는 큰 도랑이 여울지며 흐르는데 그 위에 네모진 한 장 판석(板石)으로 돌다리를 놓았다.

방금 그 다리를 건너온 듯한 율곡 선생이 검은 소를 타고 도롱이 삿갓 차림으로 절 문 앞에 당도하고 있다. 소가 아직 채 걸음을 멈추지 못한 상태인데도 고깔 쓴 승려들이 달려들어 우선 도롱이부터 벗겨드리고 있다. 정녕 ‘사문탈사’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얼굴이 보이는 쪽 승려는 나이가 상당히 들어 보인다. 아마 절의 주지인 듯하다. 주지가 직접 달려나와 이렇게 허겁지겁 도롱이를 벗겨드릴 정도라면 율곡 선생과의 관계가 어떤 것일지 대강 짐작이 간다.

문 안으로부터 젊은 승려 하나가 합장하며 달려나오고 문 안 층계까지 달려나오던 노승은 뒤따르던 젊은 승려에게 다담(茶啖·손님에게 대접하기 위해 차려 내는 다과)을 준비시키는 듯 돌아서서 무엇을 지시하고 있다.

눈 속을 뚫고 눈 사랑하는 감회를 함께하려 찾아온 현자를 맞는 사찰의 분위기가 유감 없이 드러나 있다. 영조 17년 비단에 채색한 33.1×21.2㎝ 크기로 간송미술관 소장.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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