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화제 도서]식민지주의 유산 '타이완 망요슈'

  • 입력 2001년 6월 29일 18시 38분


◆도쿄에서

몇 년 전에 일본에서 ‘타이완 망요슈(臺灣萬葉集)’란 책이 화제를 불러 일으킨 적이 있다. 그 책은 일본의 식민지 시절 타이완에서 일본어를 습득하고 일본문학을 즐겼던 타이완 사람들이 수십년이 지나 다시 일본어로 와카(和歌)를 짓고 모아서 낸 가집(歌集)이었다.

이것을 보면, 일본문학을 통해서 문학 세계에 발을 들여 놨던 타이완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와카(和歌)란 형식을 빌려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결코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문학에 있어서 식민지주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 문제는 치밀하게 짚고 가야 할 중요한 테마이긴 하지만, 여기에서는 일단 타이완에서 펴낸 가집에 왜 ‘망요슈(萬葉集)’란 이름이 붙여졌는가 하는 점에 주목하기로 한다. ‘망요슈’는 8세기 후반에 성립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와카집(和歌集)으로 약 4500여 수에 이르는 와카가 실려 있는, 나라(奈良)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그 시대를 ‘망요(萬葉)의 시대’로 부르기도 하고, 당시 사람들을 ‘망요인’이라고 할 정도로, ‘망요슈’는 그 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망요슈 이후 일본의 와카는 점차 기교를 중시해 장식적인 표현에 흐른 반면, 망요슈는 느긋하고 편안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노래하고 있어, 망요슈야말로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는 신앙마저 생겼다. 아마도 ‘타이완 망요슈’를 쓴 사람들은, 이 같은 일본 문학의 흐름에 합류함과 동시에 타이완만이 가지고 있는 토착적인 특질을 덧붙였을 것이다.

그런데 ‘망요슈의 발명’의 저자 시나다 요시카즈(品田悅一)에 의하면 ‘망요슈’가 이른바 ‘국민적인 시가(詩歌)’로 불리우게 된 것은, 메이지 시대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 같은 감정의 틀은 일본이 ‘국민국가’로 편성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국민국가는 정치, 경제, 군사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문화의 차원에서도 큰 지배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에게 공통되는 ‘국민정신’을 체현한 것으로 상상된 문학 작품을 고전의 위치에 앉혀 놓고, 교육제도를 통해서 그 고전에의 신앙을 정립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메이지 시대의 일본에 안성맞춤이었던 작품이 바로 ‘망요슈’였던 것이다.

시나다는 ‘망요슈’는 그것이 성립된 이후 약 1000년간은, 단지 소수의 문학자나 지식인들만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 주민들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책이었고, 심지어는 책 이름조차도 알려지지 않았었다고 말한다. 그러던 것이 메이지 중기 이후에 갑자기 ‘망요슈’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된 이유로는, ‘망요슈’가 ‘기교를 배제한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라고 여겨졌다는 점, 그리고 ‘망요슈’야말로 ‘서민에서 천황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민의 표현을 모은 책으로 간주되었다는 점을 시나다는 들고 있다. 이 같은 낭만주의적인 해석이 ‘망요슈’는 ‘일본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신화를 낳았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망요슈’는 모든 것을 동질화시켜 버리고 마는 ‘국민’이라는 장치를 단단하게 떠받치면서, 동시에 ‘국민’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국민국가는 한 ‘국민’이 영원히 단절없이 존재해 왔고, 또 존재하리라는 신화에 의해 지탱되는 법이다. 거기에는 유구한 옛적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국민 고유의 ‘전통’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되는데, 그 대부분이 국민국가의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중에 날조된 전통’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연숙(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