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대덕연구단지 사람들/한국 두뇌들 "대전의 제2의 고향"

  • 입력 2001년 6월 3일 19시 30분


1일 낮 12시경 대전 유성구 도룡동 호텔롯데 앞 일명 ‘효리길’ 주택가.

대덕연구단지 안에 포함돼 있는 이 마을은 외국의 한 호젓한 마을을 연상케 한다. 장미 덩굴로 뒤덮인 낮은 담과 잔디가 곱게 깔린 정원이 이채롭다. 집집마다 정원에 파라솔이 비치돼 있고 어느 집은 그네와 미끄럼틀도 갖추고 있다. 대문 앞에는 나무로 만든 우편함이 액세서리처럼 예쁘게 꾸며져 있다. 지붕에 파라볼라 안테나가 설치된 집이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100m쯤 떨어진 길 건너에 있는 대덕과학문화센터 콘서트홀에서는 이날 오후 7시반부터 대덕연구단지 음악회가 열렸다. 이 공연 외에도 호텔 앞에는 각종 공연과 세미나를 알리는 플래카드 5, 6개가 나부끼고 있었다. 거주공간과 인접한 곳에서 수준 높은 문화행사가 연일 열리는 것이다.

▽주민들 특성〓대전 대덕연구단지는 ‘대전의 섬’이라고 불린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대전 유성구에 속하지만 주민들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이 ‘보통 대전사람’과 사뭇 달라 나온 말이다. 유성구 일대 840만평에 30여년 전부터 조성된 연구단지에는 정부출연연구소 20개를 비롯해 민간연구소 등 86개 기관이 입주해 있으며 연구인력만도 석박사급 1만여명 등 모두 1만6000여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정보통신 생명공학을 중심으로 한 500여개 벤처기업도 속속 입주해 한국의 실리콘밸리라는 뜻에서 ‘대덕밸리’로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외국생활을 경험한 터라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또 높은 교육열 등으로 자녀들의 학업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이곳에서 2㎞쯤 떨어져 있는 유성구 신성동(연구단지 안) 금성초등학교에서는 최근 학생영어지도를 담당할 학부모 자원봉사자를 구한 적이 있다.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나선 주부는 모두 70여명.

이 학교 학부모회 정미숙 회장(35)은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선 학부모 대부분은 외국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는 석박사급 연구원의 부인들로 원어민 발음에 가깝다”고 말했다.

전국 규모의 영어나 수학경시대회에서 연구단지 안에 있는 금성 대덕 전민 문지초등학교를 비롯해 대덕중·고 전민중 등이 우승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서구식 생활양식〓연구단지 안에 있는 음식점과 술집 등에서 각자 계산하는 ‘더치페이’는 흔히 목격되는 광경. 유성구 신성동에서 칼국수 집을 운영하는 오모씨(50)는 “칼국수 값도 각자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민 상당수가 오랜 외국생활 때문에 독특한 생활양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연구단지 내 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도 많아 이들을 길거리에서 목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역사회와의 화합〓처음 단지가 조성될 때만 해도 이곳에 입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인들로 ‘낯선 땅’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으나 지금은 대전을 ‘제2의 고향’으로 인식하며 지역민과 호흡해 가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연구단지 안 한국인삼연초연구소 분석부 제2연구실장 이문수 박사(47)는 “이곳 연구단지는 자기 일에 혼신의 힘을 쏟는 과학자들의 밀집지역으로 국가발전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했다.

대덕연구단지관리본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연구단지에 서울과 견줄 수 없는 문화 복지 등의 인프라구축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며 “이 같은 인프라는 대전시민과 연구단지 가족들이 공유하면서 상호지원과 협력체계를 확대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이기진기자>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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