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서병훈/‘포퓰리즘’을 경계한다

  • 입력 2000년 12월 12일 18시 42분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영화 ‘에비타’에 나오는 주제곡이다. 애절한 곡조에 에바 페론이라고 하는 ‘전설적’인 여인의 한 많은 사연을 담은 이 노래가 슬금슬금 우리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었던 페론 부인의 애칭이다. 그는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페론도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는 1946년 대통령이 됐다. 노동자와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빈곤계층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었다. 페론은 9년 동안 권좌에 있다 실각하고 만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의 지지는 식지 않아 1973년 다시 권력에 복귀하게 된다. 1년 뒤 죽음을 맞자 그의 또 다른 부인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1976년 쿠데타가 일어났다. 페론 시대는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유산은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며 오늘날까지 아르헨티나 정국을 좌우하는 큰 변수가 되고 있다.

▼권력획득위한 '개혁' 주창▼

흥미로운 것은 페론 또는 페론주의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양분돼 있다는 점이다. 다수 국민, 특히 빈곤 계층은 페론 시대에 대한 향수를 지우지 못한다. 반면에 식자층을 중심으로 그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에비타와 페론, 그리고 그들이 남긴 페론주의에 대한 저주를 서슴지 않는다. 아르헨티나를 망친 주범이라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라틴아메리카에는 제2, 제3의 페론이 많다. 이런 정치지도자와 그들의 추종자들이 보여주는 정치행태를 흔히들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개념으로 형상화한다.

포퓰리즘은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한때는 ‘민중주의’라고 옮기기도 했지만,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번역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온정적 접근을 추구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민중’을 빙자하거나 사칭한 엉터리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을 주도하는 정치지도자들은 언필칭 개혁을 내세운다. 그러나 말만 개혁일 뿐 실제로는 공허하기 이를 데 없다. 권력을 획득하고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는 데 필요하다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페론은 ‘정의’니 ‘제3의 길’이니 하며 화려한 수사(修辭)를 동원했지만, 실제로는 중심도 원칙도 없는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적 편의주의, 다시 말하면 기회주의가 바로 포퓰리즘의 본질이다.

남미 대중들이 왜 이런 포퓰리즘에 열광했는가? 기회주의이기는 대중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 수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생계가 걱정이었다. 이런 한계적 상황에 내몰린 처지에서 길게 볼 여유가 없었다. 사회를 합리적으로 개혁하는 일보다는 즉각적으로 실리를 얻는 것이 더 급했다. 포퓰리즘은 이런 조급한 마음 속에 똬리를 틀게 됐다.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물량공세가 시작되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돕겠다는데 누가 탓할 것인가. 저소득 계층의 임금을 올려주고 복지를 늘리는 각종 정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혜택을 보고자 했다. 아무도 손해보지 않는,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게 하는 것, 이것이 포퓰리즘의 지향점이었다.

▼선심정책만 판쳐서야▼

그런 마술적 ‘윈―윈 전략’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 원리는 간단했다. 나라 곳간을 퍼내는 것이다. 에비타는 손을 벌리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었다. 배고프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견디지를 못했다. 그러니 국민이 감격하지 않을 리가 있는가. 천사가 따로 있는가.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러나 고통 없이 어떻게 미래가 있겠는가. 주인은 없고 객만 넘쳐나니 나라꼴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사회가 이대로 주저앉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면서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마치 죽음의 묵시록처럼 우리 사회에 퍼져가고 있다. 정치인들로부터 기업인,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나라살림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그리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세태이니 이를 어쩔 것인가. 우리도 ‘에비타’를 노래해야만 하는가. 포퓰리즘이라는 유령은 이미 우리 옆에 바싹 다가서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서병훈(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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