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日 중앙銀의 '제로 금리' 해제

  • 입력 2000년 8월 13일 19시 08분


미국의 정치 시즌에 일본에서 일어난 중요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11일 일본은행이 ‘제로금리(초저금리)’ 정책을 해제했다. 물론 미국인에겐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일본이 더 이상 미국의 위협적인 경쟁자가 아닌 터에 대다수 미국인에게 이 조치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일본은행의 조치는 잠재효과 때문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사건이다. 금리인상폭은 상징적인 수준이지만 이는 경기상승 징후가 나타나면 이에 제동을 걸겠다는 신호를 일본인에게 보내고 있다.

미국은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3%가 넘는 인플레이션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연방은행은 당분간 이자율을 동결할 전망이다. 반면 일본은행은 소비자 물가가 사실상 떨어지고 있고 국내총생산(GDP)도 3년 전에 비해 줄어들었으며 실업률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최고수준에 이르렀음에도 이자율을 올렸다.

이는 일본은행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택할지에 대한 암시를 준다. 일본은행은 최근 몇달 동안 일관된 논거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말해왔다. 주로 그들은 제로금리 정책이 기업에 너무 편안한 환경을 제공, 기업으로 하여금 모험을 하지 않게 만들었다고 불평해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도 근거는 부족하다. 제로금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은 전례 없는 부도사태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새롭게 경제의 고삐를 죄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것 같다. 마치 답을 먼저 정해놓고 그에 해당하는 물음을 찾는 행동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중앙은행에 의해 좌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중요한 경제정책 선택권을 선출직 정치인이 전문행정관료에게 넘겨줘야 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세계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일본은행은 전통적인 경제논리에서 볼 때 근거가 부족한 금리인상을 합리화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재정립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앞으로 좀더 중대한 역할을 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정리〓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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