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사람들]부창부수 …"우리는 환경운동 부부"

  • 입력 2000년 6월 5일 21시 36분


"K대 환경동아리에서 '새만금갯벌살리기' 일일호프를 한다네요. 거기서 만나면 어떨까요?"

인터뷰 장소를 물색하던 중 장지영 간사(27·환경운동연합 갯벌철새팀)가 건네는 제안이다. 그러고보니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이 새만금 갯벌이었다.

지난 3월 '새만금장승제' 취재차 내려간 부안 해창갯벌. 자정이 넘도록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분주히 움직이던 그녀의 모습에 적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후 어찌보면 학생같게 보이던 그녀가 유부녀라는 사실에 두번째 놀랐고, 그 문제(?)의 남편이 같은 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얘길 들었을 때 세번째 놀랐다.

"1999년에 결혼하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거든요. 결심을 이룬 셈이죠."

그렇다면 남편 명호 간사(30·인천환경운동연합)의 반응은?

"저는 장지영씨의 목표 달성을 위한 희생양이었죠."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는 물어보나 마나. '환경연합이 맺어준 인연'이다. 그렇다면 '중매쟁이' 환경연합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장지영씨는 대학(세종대 가정학과 92학번) 때 단과대 환경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95년 지자체선거에서 환경후보 선거운동을 하다가 환경연합과 연을 맺게 된 것. 96년부터 줄곧 환경조사국에서 일해 왔다.

반면 명호씨는 97년 환경연합 공채 출신. 연수(年數)에서나 환경운동 경험에 있어서나 장씨의 후배인 셈이다.

"대학(명지대 기계공학과 89학번)때요? 운동했죠. 4학년 마치고 군대 갔다와서 6학년(?)만에 졸업을 하고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환경연합을 택했어요. 막 들어와서 처음 얼마간은 계속 고민이 되더라구요. 사회변혁을 꿈꿔왔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환경운동이야말로 사회, 정치, 경제 모든 부문을 아우르는 총체적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사람 사이에 '전기'가 통한 건 97년 12월. '동강댐 건설 반대' 내용을 담은 플래카드를 걸기 위해 영월에 내려가야 했던 장씨가 동행자를 물색하던 중 명씨가 지원자로 나선 것. 이후 1년 가까이 비밀연애를 한 후 공식발표를 했다고.

"작년 신년식때 돌아가면서 한명씩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제 차례가 돼서 '99년에 결혼하겠다고 다짐해왔는데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죠. 아마 다들 놀랐을 거에요."

장씨의 설명. 그리고 예언(?)대로 작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가사분담은 '그냥 집에 있는 사람'이 한단다. 명씨의 주종목은 '다림질'. 요즘은 장씨가 집에 못 들어가는 날이 많아 집에서 같이 밥먹은 지도 오래라고.

결혼생활 8개월쯤 됐으니 은근히 2세 계획이 궁금해진다. 슬쩍 물어보니 남편쪽에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우리 그지(거지)에요."

두 사람이 신혼살림을 차린 곳은 은평구 역촌동 2천1백만원짜리 전셋집. 고향이 충남 태안인 명씨가 결혼전부터 살던 집이다. 그런데 집이 경매에 넘어가 언제 거리에 내앉을 지 모르는 상황. 집이 좁아 혼수로 들인 것이라곤 장롱과 세탁기 뿐이란다. 텔레비전은 명씨가 자취시절부터 썼던 3만원짜리 중고 그대로. 이쯤에서 장씨가 곁드는 한마디.

"올해는 선풍기 사야겠어요."

'적금은 붓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쓰고 남은 돈이 모인 게 700만원이란다. 장씨의 월급이 69만원 정도고 명씨의 월급이 75만원 정도니 700만원도 대단한 '거금'.

"언젠가 (아이를) 낳아야죠. 시민운동, 특히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 가정을 꾸리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부닥치는 것들이 생활의 문제고 가정의 문제잖아요. 그리고 미래세대의 문제구요."

그렇게 언젠가 아이도 낳은 후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걸까?

"지역에 내려가서 환경운동을 계속하고 싶어요. 지역에는 정말 해결해야 할 환경문제들이 너무 많은데 일하는 사람은 너무 적거든요. 우리나라 시민운동이 발전하기 위해선 지역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후 인천환경연합에 내려가 일을 하고 있는 명씨의 말.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말 것, 그러나 협의할 것'을 결혼생활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두 사람의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마주보는 게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한다. 분명 두 사람도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개발의 논리, 자본의 논리로 인해 파헤쳐지지 않는 푸른 지구를, 아름다운 세상을….

김경희/동아닷컴기자 kik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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