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日 경제침체 이유 있다

  • 입력 2000년 2월 14일 19시 54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각종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는 좀처럼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던 경제는 최근 한 일본 고위관료의 발표처럼 지난 6개월동안 또 다시 후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은 1930년이래 주요 산업국가로는 처음으로 금리를 0에 가까운 수준까지 낮췄으나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을 만큼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졌다. 90년대초 이래 불황을 겪고 있고 98년에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질 뻔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적자 재정지출을 통해 국내 수요를 늘리기 위해 애썼다. 일본은 지난 수년동안 필요없는 다리와 쓸모없는 도로를 미친 듯이 건설했다.

이러한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다. 공공사업의 폭발적인 증가에 힘입어 지난해 상반기 일본 경제는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대규모의 적자 재정지출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의 정책이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균형 재정으로 복귀해도 경기가 후퇴하지 않을 만큼 소비와 투자가 증가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의 하나로 ‘개혁’을 들 수 있다. 각종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대부분의 일본 기업에 보편화돼 있는 정경유착의 관행을 타파할 경우 새로운 투자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 같은 개혁은 단기적으로는 근로자에게 불안감을 심어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장기적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두번째 조치는 ‘통화량 확대’다. 일본은행은 단기금리를 이미 0에 가까운 수준까지 낮췄다. 장기채권을 사들이고 기업에 대한 융자 촉진책을 발표하는 등 통화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경제학 교과서들도 유동성 함정에 빠졌을 경우에 정부가 기존 방식만을 고수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개혁의 고삐를 늦췄고 최근에 이르러서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수준의 자율성을 확보한 일본은행도 획기적인 정책은 결코 실시하지 않겠다고 거듭 천명했다.

일본 경제가 더욱 악화되면 변화가 있을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일본 경제가 지난 6개월동안 경기후퇴를 겪었다는 발표가 나오기가 무섭게 일본 관료들은 또 다시 정부가 모든 일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정리〓김태윤기자> terre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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