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축구에서 정치가 배울 것

  • 입력 1997년 10월 3일 19시 57분


지난 한 주 내내 화제는 축구였다. 직장 가정 할 것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으레 한일전을 화제로 떠올리며 기분들이 좋았다. 수없이 보고 또 봐도 또다시 틀어 보고 싶은 장면들이었다. 지난 일요일 도쿄 요요기경기장,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B조 최종예선 제1차 한일전은 잊을 수없는 명승부로 한국 스포츠사에 기록될 것이다. 내달 1일의 서울 제2차전 예매표가 단 10분만에 매진된 것도 기록이다. ▼ 한·일戰의 「국민 대통합」 ▼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후반 20분 한국이 어이없이 한 골 내주자 경기는 일본의 승리로 결판나는 듯했다. 혀를 끌끌 차면서 아예 TV를 꺼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경기종료 7분 전 기적이 일기 시작했다. 서정원의 극적인 동점 헤딩골에 이어 3분 뒤 이민성의 왼발 결승골이 네트에 꽂히는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누군가는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흥분했지만 각본보다 더 극적인 반전이었다. 사람들은 감격을 이기지 못해 서로 얼싸안고 껑충껑충 뛰는가 하면 「대한민국 만세」소리가 절로 터져 나오고 애국가를 소리 높여 합창하기도 했다. 온국민을 더 할 수 없는 희열과 일체감 속에 이처럼 하나로 묶은 적이 또 언제 있었던가. 집단우울증에 시달리는 국민들이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은 골치 아픈 경제도, 식상하는 정치도 모두 잊었다. 정치가 하지 못한 국민대통합을 스포츠가 대신 해낸 것이다. 사실 이번 도쿄 한일전은 비기기만 해도 다행이었다. 한번도 월드컵 본선진출을 못해본 일본으로서는 그동안 엄청난 돈과 노력을 쏟아부으며 절치부심 축구를 키워왔다. 3천명이 브라질에 축구유학중이고 국가느괘팀의 간판스타 미우라만 해도 10년간 브라질 축구유학을 다녀왔다. 스트라이커 로페스는 최근에 귀화한 브라질 축구선수다. 브라질축구의 조직과 기교를 앞세운 일본팀을, 그것도 적진에 들어가 깨뜨린 것은 일본에만은 결코 질 수 없다는 한국선수들의 투지와 정신력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감독의 리더십에도 힘입은 바 크다. 차범근감독은 한눈에도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같아 보인다. 침착 냉철하면서도 오만하지 않다. 국가대표선수 경험이 없는 일본의 가모감독과는 달리 차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0년간 명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면서 과학적인 분석력과 국제경기감각을 익혔다. 노트북을 들고다니며 자기팀 외우듯 상대선수들을 외워 길목길목을 차단케 했고 선수들도 그대로 따라주었다. 무엇보다 정도(正道)에 따라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그의 소신이 선수들에게 확신을 심어주면서 이번 도쿄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사람들은 왜 스포츠에 열광하고 환호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멋있게싸워멋있게 이기고 또 멋있게 지는 장면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게임규칙, 엄정한 심판, 반칙에는 가차없이 내려지는 경고나 퇴장명령, 한마디로 「룰 오브 게임(게임의 규칙)」이지배하는 페어플레이의세계가 스포츠다. 정치가 축구에서 배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정치에도 「룰 오브 게임」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잊고 있거나 무시하고 있다. ▼ 당당하고 멋진 승부 ▼ 우리 선수들은 오늘 저녁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홈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보고 싶다. 멋진 승부에 목말라 있다. 그 결과 당당하게 이긴다면 또한번 국민들을 일체감 속에 하나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설령 진다 해도 최선을 다한 연후의 역부족이라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 실망과 아쉬움은 클지 몰라도 비난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남중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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