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큰사람 작은사람

  • 입력 1997년 6월 4일 20시 19분


나는 선친으로부터 「기업은 곧 사람」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내자신 삼성의 회장으로서 제일 힘든 일이 사람을 키우고 쓰고 평가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적재·適材)을 키워 필요할 때(적시·適時) 필요한 곳(적소·適所)에 쓰는 일이야말로 기업 경영자의 의무인 것이다. ▼ 실력보다 연줄에 집착 ▼ 손자병법에서도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에 못미친다고 하여 사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지 않았던가.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인 것이다. 그동안 경영활동을 해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고 경험도 해 보았다. 조직을 살찌우고 활성화하는 훌륭한 사람도 보아 왔고 조직을 망치는 사람도 경험했다. 사람의 유형을 보면 우선은 「예스맨」과 「소신파 인간」을 들 수 있다. 예스맨은 해바라기형으로 언제나 듣기 좋은 말만 한다. 그러나 자신의 소견은 없다. 문제는 숨기고 본질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말하지 않는다. 소신파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프로기질과 책임감도 있다. 당당하게 주장을 펼친다. 고집이 세 타협이 어렵지만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쪽은 역시 소신파다. 부지런히 학연 지연 혈연을 찾아 연줄을 만드는 「스파이더맨(거미줄인간)」도 있다. 이들은 실력보다는 연줄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런 유형은 파벌을 조성하여 인화를 해칠 우려가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권위주의에 젖은 「관료화된 인간」도 있다. 관료주의적 사람 밑에는 권위주의자 형식주의자들이 많이 모인다. 이들 밑에서는 큰 인물이 자랄 수 없고 자율과 창의가 꽃을 피울 수 없다. 다음으로 생색이나 내고 자기를 과시하는데 열심인 「화학비료형 인간」도 경계해야 할 유형이다. 조직에는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퇴비형 인재」도 많지만 화학비료형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예스맨」 「관료화된 인간」 「화학비료형 인간」들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능숙한 말솜씨로 여러가지를 말하는데 대개 1인칭이 아니라 3인칭 화법을 즐겨쓴다는 점이다. 「내가 하겠다」가 아니라 「사원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이다. 나는 똑같이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한 사람은 회사가 꼭 필요로 하는 「핵(核)이 되는 사람」이 되는가 하면 또다른 한 사람은 많은 사원중의 하나, 즉 「점(點)이 되는 사람」도 보았다. 두 사람을 결과적으로 이렇게 다르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 주인의식 가질 필요 ▼ 「핵이 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누구의 지시를 받기 전에 먼저 일을 찾아서 한다. 눈가림이나 생색을 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닌 만큼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기본에 충실하면서 자기 책임을 다한다.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니 자율과 창의도 넘친다. 그러니 핵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것이 내 일이라는 주인의식이나 「왜」라는 문제의식도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은 점 이외에 무엇이 되겠는가. 결국 사람은 「주인의식」의 유무에 따라 큰 사람이 되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의식이란 참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큰 힘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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