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컬처플러스]'러브하우스' 행복을 손보고 용기를 보태고

  • 입력 2002년 4월 14일 17시 43분


꼬마들이 좋아하는 놀이 중에 블록 쌓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블록 몇개로 벽을 쌓는 게 고작이지만 몇 달이 지나면 제법 문도 만들고 지붕도 올리지요. 아빠 집 엄마 집 뿐 아니라 자기만의 집도 만들고 강아지 집까지 짓습니다.

얼마 전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홀로 절을 짓는 스님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땅을 다지고 대들보를 세우고 전기를 넣고 유리창을 달고 지붕을 덮는 일까지 혼자 힘으로 해냈다는 것이죠. 스님은 트럭에 꼭 맞는 이동식 집까지 지어 통일이 되면 중국을 거쳐 멀리 서유럽까지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시더군요. 운전은 해도 자동차를 고치지 못하고, 인터넷은 자유롭게 이용하면서도 신종바이러스는 스스로 잡아내지 못하는 요즘이니까, 집 한 채를 혼자 완성하는 사람이 기인(奇人)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이 처음부터 만들기에는 무관심하고 이미 만들어진 것을 이용하는 데만 익숙한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복거일의 아름다운 소설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을 좋아합니다. 소년 시절, 주인공 재근은 혼자서 절골로 아버지를 찾아가지요. 그곳에서 아버지는 석규 아저씨와 함께 나무를 잘라 집을 짓습니다. 재근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아버지는 로빈슨 크루소와 같고 석규 아저씨는 프라이데이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야만 한다면 여러분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실 건가요.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춤을 출 수도 있고 나무열매를 따먹을 수도 있지만, 결국 집을 짓게 될 겁니다. 이때 집은 단순히 비바람을 피할 공간이 아니라 삶의 근거이자 중심이지요. 아버지가 가족들이 머무를 집을 스스로 지은 것은 더 이상 길 위에서 떠돌지 않고 이곳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의지의 표시입니다. 과연 맨 처음 절골에 들어온 재근이네 가족은 인구가 2000명이 넘을 때까지도 여전히 그 집을 지킵니다.

'러브하우스'에 출연 중인 건축가 이창하(왼쪽) 김원철씨

일요일 저녁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를 보는 이유는 ‘러브하우스’ 때문입니다. ‘게릴라 콘서트’는 감동을 강요하는 듯해 싫고, ‘건강보감’은 건강 정보를 얻는 즐거움보다 출연자들의 말장난에 얼굴 찡그리는 일이 잦지요. ‘러브하우스’ 역시 약간의 과장이 있긴 하지만, 가난과 병마로 고통받는 이웃에게 사랑의 집을 선물한다는 점에서 앞의 두 프로와는 크게 다릅니다.

어떤 이들은 집만 고쳐준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묻기도 합니다. 창문 한 짝 고칠 여력이 없어 살을 에는 겨울바람을 대책 없이 견디던 사람들이 집만 근사해졌다고 잘 살 수 있겠느냐는 물음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신동엽이 예전에 진행하던 ‘신장개업’과 ‘러브하우스’를 비교하게 됩니다. ‘러브하우스’에서 가정집을 뜯어고치듯 ‘신장개업’에서도 가게를 멋지게 바꿉니다. 그 사이 출연자는 새로운 삶을 다짐하며 방송국에서 준비한 여러 가지 극기훈련을 받지요. 그리고 하루 종일 장사를 한 다음 벌어들인 돈을 셉니다. 천 원 짜리 만 원 짜리 지폐 뭉치를 쥐고 밝게 웃던 출연자들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짓궂게 이런 상상을 한 적도 있지요. 오늘은 방송국에서 분위기를 띄우니까 장사가 잘 되겠지만, 저것마저 실패하면 이 가여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러브하우스’는 ‘신장개업’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프로그램입니다. 집을 고친다고 해서 당장 돈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새로 고친 집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이 바뀌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바뀌는 법이지요. 세파에 시달리다가도 사랑의 집으로 돌아와서 지친 몸과 마음을 누이면 새로 시작할 용기를 얻을 겁니다.

웬만큼 허리를 졸라매지 않고는 방 한 칸 마련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절약과 저축으로 마련한 집은 아무리 작아도 사랑의 집이겠지요. ‘러브하우스’는 끝났지만 아름다운 집의 잔영은 쉬이 떠나질 않습니다. 아내의 야윈 어깨가 더욱 축 쳐져 보이네요. 결혼 후 9년이 흐르는 동안, 전세금 걱정을 하며 서울 진해 논산 대전 등지로 다섯 번 이사를 다녔습니다. 올 겨울엔 그녀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울 사랑의 집을 선물할 수 있을까요. 딸아이가 만들어놓은 블록 집이 더욱 무겁고 커 보이는 밤입니다.

<소설가·건양대 교수> tagtag@freechal.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