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동아사이언스]과학은 사라져도 음악은 영원히

  • 입력 2000년 11월 29일 18시 44분


인터넷 동아사이언스(dongaScience.com)는 3일 ‘역사 속 오늘’ 코너에 최초의 신디사이저인 테레민복스를 발명한 러시아 과학자 레프 세르게이비치 테르멘(1896―1993)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7년 전 이 날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테레민으로도 불리는 이 악기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SF영화 ‘지구 최후의 날’과 히치콕 감독의 ‘백색의 공포’ ‘잃어버린 주말’ 등 영화음악에 사용됐고 미국 팝그룹 비치 보이스와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합니다.

테레민은 수평, 수직 안테나 주위에서 연주자가 손을 휘젓는 것만으로 전기장을 변화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테르멘은 1921년 테레민에 대한 특허를 딴 뒤 소련을 떠나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연주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연주활동 중에도 본국과 계속 연락하면서 초기적 형태의 텔레비전인 ‘무선 화상 원격송신기’를 설계하는 등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소련 비밀경찰은 난데없이 그에게 반사회주의 선동혐의를 씌워 뉴욕 한복판에서 그를 납치해 강제 송환했습니다. 그 후 테르멘은 자신의 연구는 접어둔 채 KGB의 감시 아래 도청장치 개발에 동원됐다고 합니다. 생사마저 알 수 없던 테르멘이 서방세계에 다시 나타난 것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나서였습니다. 납치된 지 60여년이 흐른 뒤였죠.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는 평범한 광고업자이던 주인공이 스파이로 몰리면서 갖은 고초를 겪는 장면이 나옵니다. 뛰어난 과학자이자 예술가였지만 수십 년 간 세상에서 잊혀진 채 비밀경찰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일생을 잘 표현한 영화입니다.

오늘 그리운 가족들을 만날 2차 이산가족상봉단에는 1차 때처럼 과학자들이 여럿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남과 북의 과학자 중에도 냉전시대의 희생자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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