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16…1944년 3월3일(4)

  • 입력 2003년 9월 14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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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솔 살랑살랑, 솔솔 살랑살랑, 가벼운 한숨 같은 미풍을 타고 하늘하늘 깃털 하나가 미나리를 뜯는 여자의 손길 위로 떨어졌다가 다리 쪽으로 흘러갔다. 남천교 위로 달려오는 하얀 러닝셔츠 모습의 청년이 있다. 이우근이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여자는 다가오는 청년의 모습을 밀짚모자 챙 너머로 포착하고는, 무의식중에 목덜미가 예쁘게 보이도록 고개를 내밀고, 젖은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형제가 어쩜 저리도 미남일꼬.”

“부산에 있는 초량상고에 다닌다고 하제.”

“에미 애비 다 죽고, 형은 행방을 알 수가 없는데, 형의 첩네서 먹고 자고 할 수도 없다 아이가.”

“인자는 첩이 아이다. 호적에 올렸다더라.”

“아이고, 자기 마누라를 쥐도 새도 모르게 호적에서 파내고는.”

“인혜의 두 딸을 종처럼 부리면서 지는 하루 종일 바깥에서 빈둥거린다.”

“어제 저녁 때, 영남루 계단에서 신자가 울면서 남동생 데리고 가더라.”

“그 아들아는 정희 아도 아니다, 그 OK 카페 댄서, 이름이 뭐라꼬 했더라….”

“김미영.”

“그래 맞다, 김미영이 아다.”

“아이고, 에미는 다른데, 사내 자슥들이 얼굴이 다 비슷비슷해서 누가 누구 안지 알 수가 있어야제. 나이도 고만고만하제. 세상이 이래 험악한데 씨를 잘도 뿌무제.”

“그 집 아들도 남 얘기 할 처지는 아일 텐데.”

“아이고 우리 만재는 지 마누라밖에 모른다.”

“암만 그래도 그렇제, 인혜나 미영이나 지 배 앓아 낳은 아를 잘도 두고 갔제. 계모한테 설움 받을 거 잘 알 텐데, 계모가 그 정희 아이가.”

“알 수 없는 일이제, 내 같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데리고 간다. 자식새끼 내버리고 집 나가는 에미가 어디 그래 흔하나.”

“재혼했다는 말이 있던데.”

“재혼해서 아들까지 낳았다.”

“아이고, 불쌍타. 미옥이가 열세 살, 신자가 일곱 살이제 아마. 정희는 시집 보낼라고 안달이 났다.”

“하지만도 혼례도 치르지 않고, 아비 축복도 못 받은 정희 자슥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가네 사람들은 어째 그리 팔자가 더러운지 모르겠다. 우철이 아버지는 단독으로 죽고, 여동생은 물에 빠져 죽고, 배다른 여동생은 소아마비 아이가.”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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