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56)

  • 입력 1999년 10월 27일 18시 41분


꼭 한번 밖에 나가 본 적이 있었다. 악성 중이염으로 이비인후과 병원이 있는 시내 종합병원에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비좁은 화장실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머리에 끼얹는 냉수욕 탓이었을 것이다. 귀에 물이 들어갔는지 정수리를 두드리면 머릿속 한가운데서 목탁을 치는 듯 맑고 투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가 한 시간이 넘게 그 지경이라 답답해서 나뭇가지로 뚫어 보겠다고 몇 차례 쑤신 것이 덧났던 모양이었다. 아침에 잠이 깨고 보니 귀 언저리에 열이 나고 볼따구니도 부어올랐으며 통증이 심했다. 처음에는 그저 욱신거리는 정도였다가 아픔이 깊어지고 맥박처럼 빨라졌다. 못견딜 정도가 되어 의무실에 가서 호소했지만 귓구멍 근처에 소독약을 대충 발라 주고 항생제 몇 알 주는 것이 치료의 전부였다. 그날 밤은 그야말로 긴 악몽의 연속이었다. 이틀 밤을 그렇게 보내고나서야 외부 진료의 허가가 떨어졌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먼저 내가 이송 오던 날 입감 수속을 했던 방에 가서 벌거벗고 몸 수색을 받은 다음에 푸른 기결수복을 벗고 회색 이송복으로 갈아 입었다. 발에는 뒤축을 잘라낸 검은 고무신을 신는다. 수갑을 차고 그 위에 포승 줄을 묶고 연이어 두 팔뚝이 옆구리에 꼭 붙도록 묶은 다음에 뒤로 늘어뜨린 줄을 두 명이 일개 조가 된 호송 교도관 중 한 사람이 잡는다. 어차피 점심은 소내에서 먹고 외부에 나가게 되어 있으니까 뭘 얻어 먹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사복한 주임과 교사의 모습을 보았다. 모자도 벗고 계급장도 없는 맨 머리의 교도관들은 갑자기 이웃 동네 사람들로 보였다.

지프 한 대가 정문을 향하여 시동을 건 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교사가 차례로 올라 뒷자리에 앉았고 운전기사 옆의 승차 책임자석에는 주임이 앉았다. 지프는 기적처럼 활짝 열린 거대한 철제 정문을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주욱 빠져 나갔다. 곁에 앉은 교사가 껌 두 개를 꺼내어 하나는 벗겨서 제 입에 넣고는 다시 한 개를 더 벗겨서 두 팔과 손을 움직일 수 없는 내 입술 끝에 갖다 댔다. 나는 입을 벌렸고 껌이 입 안으로 쑥 들어왔다. 그러므로 내게 자유의 냄새란 박하 향기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갔다. 그게 한 여름 장마철이었으니까 다리 아래로는 흙탕물이 되어버린 강이 둑에까지 찰랑찰랑 맞닿아 있었다. 날은 잔뜩 흐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나는 곁으로 지나치는 새로운 모양의 자동차들이며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고개를 젖히며 돌아볼 정도로 유심히 관찰했다. 아무도 이쪽을 마주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앞 자리에 나란히 앉아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거나 그냥 혼자서 정면을 무심하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어느 노인이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서있었는데 잠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차도 그때 네거리에서 기다리고 서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와 눈길이 마주쳤을 때 얼른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더니 오래 참지 못하고 다시 자세히 살피려는 것처럼 고개를 바로 했다. 그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신호가 바뀌고 우리 차가 먼저 그 자리를 떠났다. 시내의 번화가에 들어섰지만 나라는 존재는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했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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