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51)

  • 입력 1999년 10월 21일 19시 10분


나는 여전히 고개만 숙이고 앉아 있었다. 목사가 손을 쳐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서 어서들 드시오. 우리 목회도 사정이 그리 넉넉지는 않지만 조금 준비를 했소.

목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젊은이들은 제일 먼저 양념통닭을 집어들었다. 나도 뒤질세라 닭다리 하나를 집어 들고 뜯기 시작했다. 얼마만에 먹어 보는 닭고기인지 몇번 씹지도 않았는데 목젖이 어서 넘어와 달라고 보채어 그대로 미끈하게 넘어가 버렸다. 튀기고 나서 그 위에 마늘 소스를 발라 다시 따끈하게 익힌 것 같다. 벌써 학생들은 두 개째를 씹어 넘기는 중이다. 먹다가 곁눈질로 살펴보니 목사는 점잖게 돋보기를 밑으로 내려 쓰고 성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느 틈에 닭고기는 사라져 버렸고 앙상한 뼈다귀 몇 개만 남았는데 그래도 떡이 아직 수북하게 남아 있다. 우리의 허기가 조금 가셨다고 생각 되었는지 목사가 말했다.

음식을 들면서 얘기나 해봅세다. 오 씨는 무기수인데… 종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개지구 있습네까?

나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내 입 안에는 인절미가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고맙게 생각하다니?

이렇게 좋은 음식을 준비해 오셔서요.

오 씨는 본래 고향이 이남이디요?

그렇습니다.

기럼 공산두이 사상이레 어드렇게 알게 되었습네까?

나는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저는 아무것두 모르는데요.

옆에서 인절미를 우물거리고 있던 학생회장 젊은이가 유쾌한 목소리로 받았다.

목사님은 마 그것도 모릅니꺼. 조작인기라요.

그러문 더욱 쉬운 일 아니오? 생각을 바꾸겠다고 하문 당장 집에 보내줄 텐데.

놓아 주지도 않고예, 그건 거짓말입니더. 무조건 때려 놓고 맞은 잘못을 시인하라는 소리 아닌교?

아까 들어보니 자네두 국보법이두만. 하여간 북괴가 호시탐탐하구 있는데 국론을 분열시킨 잘못이야 있갓디.

키다리 학생이 말했다.

국론은 죄없는 양민을 학살한 독재권력이 분열시켰죠. 그 자들이 우리 대신 여기 들어와야 해요.

이제 탁자 위에 음식은 남아있지 않았다. 목사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북에서의 고행과 탄압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회장 학생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남의 집 얘기는 마 고만하이소. 우리는 아무 껏도 모른다 아입니꺼. 그쪽을 욕하고잡어도 머 아는기 없는기라. 인자부터 자세히 알아볼꺼구마는.

내가 기다리다 못해서 나서기로 하였다.

목사님, 이담에 밖에 나가게 되면 꼭 목사님의 교회에 나가서 순수한 예배 자리의 기도를 올리게 될지두 모릅니다. 귀한 음식은 정말 고마웠습니다. 우리는 이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성경을 읽을 작정인데요, 작별 기도나 해주시지요.

그 무렵에 이런 식의 만남은 한 달에 두어 번씩 있었다. 처음에는 고지식하게 말대꾸를 던지던 젊은이들도 이력이 났는지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참을성 있게 교양 강좌를 들어넘겼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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