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42)

  • 입력 1999년 10월 11일 18시 39분


쌍화차 주시오. 그리고 댁도 한 잔 드시고.

예, 저는 괘안아라우.

하고나서 아줌마가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벨일이여. 옛날 양반이 오셨는갑네.

왜요?

차 인심이 남아 있어서 안그러요.

요즘은 차 사는 사람두 없습니까?

아줌마가 또 웃었다.

여그 잘 오지도 않고 모도 앉은디서 시켜다 먹지요. 차도 시키고 티케트도 끊고….

나는 잘 모르는 일에는 입을 다무는 게 오랫동안의 버릇이어서 잠자코 있었다. 쌍화차는 거의 한 끼니 수준이었다. 달걀 노른자에 대추며 땅콩이며 깨알 등속이 가득 들어있다. 아줌마는 전화를 받기 시작한다.

예 어디요? 농협은 발써 갔는디. 쫌 기다리시요.

다시 전화를 받는다.

하정리 안골이오 밖골이오? 잉 안골로 가다가…들에 있다고라. 그럼 우리 아가씨 탄 오도바이가 지난께 거그서 불르소.

그네는 전화를 턱에다 끼운채로 부지런히 받아 적는다. 먼저 두 여자가 들어서고 다시 오토바이 헬멧을 쓴 청년이 들어선다. 아줌마가 먼저 들어선 여자에게 말했다.

농협에서 독촉 전화 왔든디.

아슬아슬하게 궁둥이께로 치켜 올라간 미니 스커트에 무릎까지 올라가는 부츠를 신고 속눈썹을 길게 늘어뜨린 처녀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거긴 우리가 아녀요. 우린 시방 부동산에서 오는데요.

하면서도 그네는 나를 힐끔힐끔 관찰한다. 곧 관심을 끊었는지 주방 앞에 가서 높다란 카운터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뒷전의 처녀는 몸매가 다 들어나는 내복 같은 타이즈를 입고 가슴이 패인 셔츠 위에 커다란 남방 자락을 젖히고 입구 옆의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섰다. 아줌마가 말한다.

삼촌아 너 하정리 아냐?

옛날 도정공장 있든디 아녀요?

그려, 거그 안골로 들어가다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 있단다. 커피 일곱 잔여.

하면서 아줌마는 쟁반째로 보자기에 싸두었던 주문품을 내주었다. 청년이 투덜댄다.

티코 들어와야 쓰겄는디.

야야 느이들 중에 한 사람만 오도바이 뒷자리 타고 갔다 와.

거그는 비포장이라 데꾸부끄가 심할 거인디.

아줌마가 주방 카운터 앞에 마주앉은 처녀에게 말했다.

너 얼릉 갔다 와라.

아유, 언니 난 미니라 오도바이 뒤에 못 타.

그럼 니가 갔다 와. 얘는 기원에 나가고.

나두 낼은 미니 입구 나올 거야 쓰발 거.

구시렁대는 작은 다툼이 있고나서 두 사람이 나가고 나머지 타이즈 차림도 쟁반 보따리를 들고 나갔다. 나는 전화 사용을 청하기 전에 우선 아줌마에게 말을 건다.

장사가 잘 되네요.

그럭저럭 현상유지는 됩니다.

돈 잘 버시겠소.

주인이 잘 벌지. 내야 쟤들처럼 월급 받는디. 아니 팁도 없응께 쟤들만도 못허요. 주인은 이런 반디를 세 개나 갖고 있소안. 저녁에 수금하러 한 바퀴 돌먼 되지라.

<글:황석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