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68)

  • 입력 1997년 3월 14일 07시 53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23〉 그런 경우 여자는 거기까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망신은 온전히 남자에게로 돌아갔다. 밖에서 어떻게 처신을 하고 돌아다니길래 여자가 이곳까지 찾아왔겠느냐는 식으로 모두들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전에 한 번은 모녀가 함께 어떤 선배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 달에 두세 번 그렇게 찾아왔을 것이다. 본인은 자신이 아무 잘못한 것이 없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고 다녔지만 그 정도라면 따라다니며 지켜보지 않아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만한 데가 있는 것이었다. 그 일은 기숙사 내부뿐 아니라 고향 마을에까지 나쁜 소문으로 퍼졌다. 결국 그 선배는 졸업을 앞둔 가을 학기 중간 제 발로 기숙사를 나가고 말았다. 새로 기숙사로 들어온 신입생들조차 전설처럼 내려오는 그 일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러는 선배들이 새로 기숙사에 들어온 후배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며 그 방면의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면회라면 다들 반갑다거나 기쁜 얼굴보다 놀라는 얼굴을 먼저 했다. 밖에서 지은 죄가 없으면 찾아올 여자도 면회도 없는 것이었다. 『임마, 내가 찾아올 여자가 어디 있어?』 『그걸 형이 알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면제」의 그 말속엔 그거야 형이 뿌린 잘못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뜻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내가 알다니?』 『그렇잖아요, 일이. 형이 모르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고요』 「면제」와 그런 말들을 주고 받을 때 또 한 후배가 계단을 내려오며 같은 말을 전했다. 그래서, 혹시 그녀가 자신이 떠난 다음 바로 뒤따라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가봐요, 일단. 알 만한 사람이니까 찾아왔겠지요. 찾아올 만한 사람이니까 찾아온 거고』 그 말도 은근히 그의 속을 뒤집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후배를 붙잡고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점호 전까지 들어올 테니까 기다려』 자정 전까지는 출입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통제하는 건 아니었지만 열 시가 되면 방별로 외출 몇 명, 외박 몇 명하는 식으로 인원 점검을 했다. 그래, 찾아올 만하니 찾아온 것일 것이다. 그는 찾아온 사람이 틀림없이 그녀일 거라고 생각했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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