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더위를 물리치는 여름 장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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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 보양식 장어덮밥.
일본의 대표적 보양식 장어덮밥.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어릴 적 동네 항구 근처에서 장어가 잘 잡히는 곳을 알게 되었다. 어느 토요일 해질 무렵 동생과 함께 장어 몇 마리를 잡았다. 일 때문에 주중에는 거의 만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산 장어를 통째로 잘라 데리야키 소스를 뿌려 조리하면서 장어가 얼마나 맛있는지 설명해 주셨다.

처음 맛보는 장어요리는 침을 흘리며 기다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먹었을 때는 ‘우윀…’. 껍질은 가죽같이 질기고, 비위를 건드리는 이상한 냄새까지 나며 흙을 씹는 것 같았다. 장어는 연어와는 정반대의 인생을 산다. 바다에서 알을 깨고 나와, 강을 거슬러 올라가 3∼10년을 산다. 5cm 정도의 새끼 장어들은 집단으로 이동하고, 협동심이 아주 강하다. 강을 거슬러 오르며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몸을 단련한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 사람들이 ‘앙굴라’라고 부르는 새끼 장어는 희소성으로 인해 엄청나게 비싸다. 10월에서 이듬해 2월경 새끼 장어가 강에 도착하면 잡기 시작하는데 크리스마스쯤 되면 1kg에 1000유로 정도에 거래된다. 이 때문에 바다의 트러플로 불린다. 전통적인 요리법은 올리브오일과 마늘, 고춧가루에 살짝 볶아 재료 자체의 맛을 최대한 살려내는 것이다. 산세바스티안 지역의 미슐랭 3스타 셰프인 후안 마리 아르사크의 식당에서는 애피타이저로 앙굴라 위에 베샤멜 소스를 얹은 한 입 크기의 토스트를 4만∼5만 원에 팔고 있다. 타파스 바로 불리는 스패니시 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앙굴라의 대부분은 오징어 먹물로 거무스름한 색과 모양을 만들어 낸 가짜다.


무더운 여름철 한국의 대표적인 보양식이 삼계탕이라면 일본은 장어다. 실제로 장어가 가장 맛있을 때는 가을에서 겨울 사이로 동면에 들어가거나 알을 낳기 위해 바다로 떠날 준비를 할 때다. 그런 장어가 일본의 여름 보양식이 되는 데는 ‘일본의 다빈치’라 불리는 히라가 겐나이(1728∼1780)가 영향을 끼쳤다.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떨쳐 ‘일본의 다빈치’라 불렸던 그는 장어 요리집을 하는 친구가 여름철 장사가 어렵다고 도움을 요청하자 ‘장어를 먹으면 여름 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는 글을 써줬다. 그의 명성으로 이 가게가 장사가 잘되자 모든 장어식당이 그의 글을 복사해 붙인 것이다. 이후 장어는 일본의 여름 보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장어의 요리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상인 밀집 지역인 오사카식은 배 쪽을 가른다. 숯불에 구우면서 소스를 발라 겉은 바삭하고 부드럽다. 도쿄식은 등 쪽에서 장어를 가른다. 에도시대 사무라이의 할복 풍습과 관계가 있는데 절대 배 쪽을 가르지 않는다.

도쿄식은 먼저 숯불에 구운 다음 찌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번거롭다. 하지만 오사카식보다 더 부드럽고, 소스를 적셔가며 굽기 때문에 익으면서 흐르는 즙과 향이 더 깊은 맛을 낸다. 어떤 식당의 경우 100년 된 소스를 사용한다고 한다.

일본의 유명한 장어식당에 갈 때는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을 하고 가도 30분 정도를 기다려야만 제대로 된 장어를 먹을 수 있다. 이유는 손님이 도착해야 산 장어를 잡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요리가 나올 때까지 빨라도 20분 이상 소요된다. 두 가지 맛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단 오사카 지역을 벗어난 대부분의 장어식당에서는 도쿄식으로 요리를 하고 있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여름 장어#일본의 다빈치#장어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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