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뿌리깊은나무’와 잡지의 재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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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 창간호와 ‘샘이깊은물’ 창간호.
‘뿌리깊은나무’ 창간호와 ‘샘이깊은물’ 창간호.
 1976년 3월 한 월간지가 세상에 나왔다. 표지 제호는 훈민정음 글자체였고, 쌀을 담고 있는 농부의 거친 손이 표지사진으로 실렸다. 강렬하면서도 깔끔한 디자인은 보는 이의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한글만으로도, 가로쓰기만으로도, 우리의 전통과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이렇게 멋진 잡지를 만들 수 있구나. 사람들은 놀랐다.

 ‘뿌리깊은나무’. 발행인은 한창기(1936∼1997)였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그는 전공을 버리고 영어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백과사전 팔아 번 돈으로 이 잡지를 만들었다.

 그는 창간사에 이렇게 적었다. ‘뿌리깊은나무는 우리 문화의 바탕이 토박이 문화라고 믿습니다. 또 이 토박이 문화가 역사에서 얕잡힌 숨은 가치를 펼치어, 우리의 살갗에 맞닿지 않은 고급 문화의 그늘에서 시들지도 않고 이 시대를 휩쓰는 대중문화에 치이지도 않으면서, 변화가 주는 진보와 조화롭게 만나야만 우리 문화가 더 싱싱하게 뻗는다고 생각합니다.’

 근대화 산업화의 구호가 무성하던 1970년대, 한창기는 오래된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브리태니커 판소리회를 결성해 100차례에 걸쳐 판소리 감상회를 개최한 것도, 목수 뱃사공 화전민 부보상 등 민중의 삶을 기록한 것도, 녹차와 찻그릇을 보급한 것도, 팔도 시장을 누비며 문화재를 열심히 수집한 것도 모두 이즈음부터였다.

 그 마음과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잡지가 ‘뿌리깊은나무’다. 이 잡지는 상업문화가 득세하기 시작하던 시대에 전통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근대화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성찰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한글로 잡지를 만들고 편집디자인의 새 역사를 썼다는 점에서 우리 잡지문화사의 일대 혁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뿌리깊은나무’는 1980년 8월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폐간되었다. 한창기는 1984년 11월 그 후속격으로 월간지 ‘샘이깊은물’을 창간했다. 

 최근 서울 성북구의 한 작은 갤러리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렸다. 전시 제목은 ‘1976년의 봄과 1984년의 가을’.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의 전권(全卷)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옆에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이 있다. 한창기가 수집한 문화재를 소장 전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 가면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을 만날 수 있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
#뿌리깊은나무#샘이깊은물#월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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