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박탈과 숭배 사이… 어떤 소유를 택할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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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소유하는 것 외에 다른 관계를 몰랐다. 그들 자신도 소유되어 있었다.”―‘빼앗긴 자들’(어슐러 르 귄·황금가지·2002년) 》
 


 뛰어난 공상과학(SF)소설은 현재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SF소설이 그리는 미래는 대체로 확장된 현재이거나 지연된 과거다. 잘 씌어진 SF소설이 현재의 우리에게 섬뜩할 정도의 충격을 안겨 주곤 하는 이유다.

 어슐러 르 귄의 ‘빼앗긴 자들’이 최고의 SF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빼앗긴 자들’ 속에는 두 세계가 있다. 하나는 무정부 상태에서 사적 소유를 배제하고 공산주의 공동체를 실현한 ‘아나레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와 국가주의가 극단적으로 실현돼 소유가 최상의 가치로 추앙되는 ‘우라스’다.

 이야기는 아나레스에 살던 주인공 쉐벡이 우라스로 건너가며 시작된다. 쉐벡은 천재 물리학자이다. 모든 것이 균일해야 하는 아나레스에서 출중한 재능을 지닌 그가 살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경직된 아나레스 사회의 부조리를 수차례 목격한 쉐벡은 대안을 찾아 우라스로 간다. 자신이 증명해낸 공식을 통해 우라스와 아나레스 간의 자유로운 소통을 꿈꾸지만 그는 곧 그의 지적 능력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파놓은 덫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쉐벡의 모습은 마치 두 세계를 잇는 순례자처럼 보인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그는 두 세계의 명과 암을 가감 없이 느끼고 묘사한다. 차별과 빈부 격차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우라스나 허울뿐인 무정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을 억압하는 아나레스 모두 그의 눈에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현대인의 삶에 관한 사고실험(思考實驗)을 하는 기분으로 찬찬히 읽는다면 지적인 자극과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소설 말미에서 쉐벡은 어떤 성과도, 명예도, 부도 얻지 못한 채 아나레스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가 휘저어 놓은 두 세계는 이전과 같지 않다. 우라스에서는 체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아나레스에는 쉐벡에게 동조하는 ‘자발적 조직’이 생겨난다. 이야기는 명확한 결론이나 전망 대신 희망을 남겨둔 채 마무리된다. 마치 우리의 미래가 여전히 변화할 여지가 남아 있는 것처럼.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빼앗긴 자들#어슐러 르 귄#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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