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한꺼풀 벗겨보면 도긴개긴 인간본성… 시대의 위선 꼬집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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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수녀는 애인이 없는 동료 수녀들의 방해를 받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간격을 두어 애인을 찾아오게 했고 다른 수녀들도 최선을 다해 비밀스럽게 스스로를 위안했답니다. ―데카메론(조반니 보카치오·민음사·2012년) 》

요지경 세상이다. 제자들이 존경하던 저명한 교수님은 하루 만에 논문 표절자로 드러나고 성스러운 예배를 주재하던 목사님들은 한순간의 욕정에 무릎을 꿇는다. 사회적인 지위와 관계없이 한 꺼풀만 벗겨 보면 여지없이 동물에 가까운 인간의 본성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시대와는 상관이 없는 듯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인 조반니 보카치오는 약 660년 전 이 작품을 썼다. 데카메론은 ‘10’을 뜻하는 그리스어 데카와 ‘날’을 뜻하는 메론의 합성어로 ‘10일’이라는 뜻이다. 보카치오가 만들어낸 가상의 남녀 주인공 10명은 흑사병을 피해 피렌체 근교로 도피한 뒤 열흘 동안 각자 매일 한 편씩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준다. 데카메론 아홉 번째 날 두 번째 이야기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역의 유명한 수도원이 배경이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던 이사베타라는 젊은 수녀는 친척이 면회를 왔을 때 따라온 청년과 서로 한눈에 반한다. 청년은 그 후 밤마다 수도원에 몰래 들어가 이사베타와 밀회를 즐긴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어느 날 밤 동료 수녀들은 이사베타가 남자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곧장 수녀원장에게 고한다. 하지만 그 순간 수녀원장도 몰래 남자와 밀회를 즐기고 있었던 것. 수녀원장은 급한 나머지 남성의 팬티를 삼각 두건으로 착각하고 착용한 뒤 밀회를 즐기고 있던 남녀를 근엄하게 꾸짖는다. 하지만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목격한 수도원의 수녀들은 다같이 한바탕 웃고 그때부터 각자의 애인과 밀회를 즐기기로 한다.

데카메론은 중세교회의 세계관이 유럽을 지배하고 있는 시기에 쓴 것치고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다. 시원한 선풍기 바람 아래 고금을 통틀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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