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 카페]프랑스혁명 직전의 숨막히는 악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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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코스타상 소설 ‘순수’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코스타 상의 2011년 수상작은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순수(Pure)’에 돌아갔다. 40년 전통의 코스타 상은 소설, 전기, 시, 청소년 소설, 데뷔 소설의 다섯 개 부문에서 각각 후보작을 뽑은 뒤 한 작품을 선정해 상을 수여한다.

소설은 프랑스혁명 직전인 1785년,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기술자 장 밥티스트가 프랑스 국왕의 부름을 받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하며 시작된다. 혁명 전 베르사유 궁전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처럼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다. 장 밥티스트는 국왕으로부터 파리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공동묘지인 레 지노상트를 허물고 묘지의 시체들을 없애 버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아직 앳되고 순진한 그는 레 지노상트에 도착한 후 참담한 광경에 충격을 받는다. 수많은 시체들이 묘지 안에 다 들어가지 못해 묘지 밖에 나뒹굴고, 악취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끔찍한 광경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는 장 밥티스트는 묵묵히 작업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장 밥티스트가 묵는 하숙집 주인 부부, 그 부부의 딸, 묘지 공사를 위해 고용한 네덜란드인 광원들 등 그의 주변 인물들은 살인, 강간, 탐욕, 열정, 자살 등 책의 제목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을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장 밥티스트는 점점 자신의 작업, 평소 가지고 있던 신념과 생각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과 삶에 대한 경계가 무너지고, 공포와 경외의 차이가 모호해진다.

주인공인 장 밥티스트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프랑스 파리에는 실제로 레 지노상트라는 공동묘지가 존재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국왕이 그랬듯 실제로 이 묘지는 왕의 지시에 따라 해체돼 시체들은 파리 외곽의 지하묘지 카타콤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일까. 코스타 상 심사위원장이었던 조르디 그레이그는 이 소설의 강점이 ‘그 시대의 생생한 묘사’에 있다며 칭찬했다.

포일스 서점의 웹 편집자이자 2010년 코스타 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조나단 루핀은 “짓밟혀 성난 민심과 이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지배 계층의 이야기는 비단 프랑스혁명 시대의 것만은 아니다. 이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오랜만에 문학 작품이 코스타 상을 수상한 데 대해 기대감을 표시했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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