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역사]<4>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 입력 2009년 8월 5일 02시 56분


쇼핑+문화 복합 지하공간
거대한 ‘소비욕망 분출구’

《우리는 ‘소비의 사회’에 살고 있다. 거리에 나서면 수많은 소비적 이미지를 공유하는 인파의 행렬에 동참하게 된다. 현대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그 행렬의 활동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것이 ‘쇼핑’이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는 “쇼핑은 마지막으로 남겨질 공공 행위의 형식이며 그 거대한 중독성으로 인해 도시의 다른 모든 공간 프로그램을 잠식하고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바이러스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현대 도시 공간이 복잡해질수록 ‘쇼핑 프로그램’의 구조는 크고 강해진다. 2000년 5월 개장한 코엑스몰은 도시의 구조를 바꿀 정도로 큰 규모의 쇼핑 공간을 만들어 낸 국내 첫 사례다. 전철역, 무역센터, 아셈타워, 호텔, 백화점, 공항터미널을 연결해 거대한 지하공간을 구성했다.》

영화관-수족관-상가 등 대도시 서울의 축약판
문화적 욕구 해소하는 도심 오아시스 변신해야

코엑스몰이 위치한 삼성동의 이름은 봉은사, 무동도, 닥점의 세 마을을 합쳐 ‘삼성리’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1960년대까지 이곳은 갈대밭 무성한 수도권 농촌이었다. 그랬던 곳이 정책적으로 조금씩 개발되기 시작하더니 1980년대 한국종합무역센터 개발계획으로 정점을 맞았다. 1990년대 후반의 벤처 붐, 테헤란로 금융기관 및 정보통신업체 발전과 맞물려 이곳은 다양한 성격의 소비자를 포용하는 대단위 쇼핑공간으로 발전했다.

코엑스몰의 생장(生長) 분기점은 2000년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 서울 개최였다. 세계적 행사를 계기로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신흥공업국에서 첨단기술국으로 바꾸기 위해 기업 자본과 정부 권력을 총동원한 대규모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구현됐다. 본관과 신관을 더한 넓이는 여의도공원의 절반, 잠실종합운동장의 14배에 이른다.

도시를 이루는 요소는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프로그램의 연속적 결합으로 공간이 구성된다. 코엑스몰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집적된 대도시 서울의 속성을 축약판으로 한눈에 보여준다. 갖가지 식음료시설이 설치된 성큰(sunken·지하) 공원, 영화관, 수족관, 의류상가 등으로 줄줄이 이어지는 상점의 행렬은 ‘쇼핑의 무력(武力)’을 느끼게 한다.

코엑스몰은 대자본이 투입된 소비공간이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평등하게 개방된 공간으로서 도심 광장과 비슷한 역할도 수행한다. 복합적인 엔터테인먼트 쇼핑공간이자 보행자 통행로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쉴 거리와 이벤트를 제공하는 문화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처음 방문한 사람은 이곳이 하나의 거대한 미로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미로의 느낌은 공간의 신비감을 더하고 이를 통해 더 큰 소비욕구를 이끌어낸다. 특히 젊은층의 ‘소비적 배회’를 유도하고 그것을 습관적으로 즐기게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여기가 단어의 뜻처럼 실제로 길을 잃게 만드는 미로는 아니다. 코엑스몰은 공간의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 통로마다 다른 이름을 붙여 지루한 느낌을 덜어냈다. 이름에 따라 각각 인테리어를 달리해 보행자가 시각적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독일 출신 공간연출마케팅 전문가 크리스티안 미쿤다가 이야기한 ‘제3의 공간’ 사례를 보여주는 특징이다. 상업적 공간이 소비를 유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요즘의 상업적 공간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소비와 판매가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의 장소가 되는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소비재처럼 작용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상품 소비의 본질은 사용가치의 획득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행복, 안락, 성공, 풍요, 권위 등 사회문화적 가치를 획득하는 데 있다”며 “사람들은 상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면서 사회적 권위와 삶의 여유를 얻고 문화적 욕구를 해소한다”고 했다. 한국의 코엑스몰도 극단적 소비공간으로서의 기능성을 뛰어넘어 더욱 생산적인 문화적 코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도심 속 오아시스로의 변신을 모색할 때가 됐다.

장윤규 국민대 교수·운생동건축 대표

※5회는 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부산 기차역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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