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서울시립미술관 ‘시티-넷 아시아 2009’전

  • 입력 2009년 10월 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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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민은…” 네 도시 이야기

《고층건물과 아파트가 즐비한 중국 베이징의 도심 사진. 웅장한 풍경 속에 뜬금없이 거대한 트랜스포머가 보인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빌딩을 슬쩍 로봇으로 변형한 치펑의 작품은 중국이 과시하는 기념비적 건물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도발적 사유로 이끈다.》

서울-이스탄불-베이징-도쿄 작가 40여명
서구화 따른 갈등-일상의 소외 등 담아

험한 산길을 말과 당나귀를 타고 여행하는 양복 차림의 두 남자. 이들의 목적지는 영국 런던의 현대미술관. 터키 작가 셰네르 오즈멘과 엘칸 오즈겐의 비디오 ‘테이트 모던으로 가는 길’은 현대미술의 중심, 주류에의 진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반어적으로 그려낸다.

이들 작품을 선보인 서울시립미술관의 ‘시티-넷 아시아 2009’전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고민과 발전 가능성을 조망하는 자리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주도 아래 도쿄 모리미술관, 베이징 진르미술관, 이스탄불 현대미술관이 협업으로 마련한 전시다. 4개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지역에 맞는 주제를 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작가를 선정해 각 도시의 개성을 담은 ‘네 도시 이야기’를 펼친다.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국가가 아닌 도시의 정체성에 중점을 둔 전시라 색다르다”고 소개했다.

전시를 보면서 아시아 미술이 공유하는 지점과 다른 점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대 서사를 강한 메시지나 표현으로 녹여낸 터키와 중국에 비해 일본과 한국 작가들은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내면에 관심을 드러낸다. 주제는 도쿄의 ‘중심을 벗어나’(큐레이터 나쓰미 아라키), 베이징의 ‘퇴적작용’(리 샤오치엔), 이스탄불의 ‘새로운 대륙: 이스탄불’(레벤트 칼리코글루), 서울의 ‘양날의 검’(조주현). 작가 40여 명의 회화 사진 조각 설치 영상 등 1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11월 22일까지. 02-2124-8800

○ 이스탄불, 베이징

낯설면서 새롭다. 이스탄불의 ‘새로운 대륙’전은 국내에서 접할 기회가 드문 터키 현대미술을 조명하고, 베이징의 ‘퇴적작용’전은 기존에 알려진 중국 현대미술과는 또 다른 측면을 조망한다.

동서양 문화의 만남의 장이자 혼성문화의 산실이었던 터키. 1970년대생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는 현대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과 문제를 짚어내고 고민한다. 두 스크린을 통해 공적 장소와 사적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을 일깨우는 귈쉰 카라무스타파의 ‘광장의 기억’, 이민가정에서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힘과 권력의 이면성을 짚어낸 할레 텐게르의 ‘횡단면’, 정신병동에서의 하루를 담은 쉬크란 모랄의 작품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확신과 정치 문화적 평등에 대한 약속에 의문을 품고 있다.

국제적으로 급부상한 풍요로운 상황 속에서 예술정신과 질에 대한 반성도 제기되는 중국 미술. 전시에선 급변하는 사회상황을 직시하면서 각자 고유의 언어로 상상과 표현의 자유를 추구한 뚝심 있는 작가 10명을 내놓았다. 증명사진과 농기구를 이용한 설치작품을 선보인 바이이뤄, 두 그림의 물감이 마르기 전에 붙였다 떼어내 새 이미지를 만든 리칭, 자신의 갈비뼈를 도려낸 수술 등 신체와 정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퍼포먼스의 허윈청 등은 중국 미술의 잠재력을 엿보게 한다.

○ 도쿄, 서울

일본의 여러 작가는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며 자신의 감각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3박 4일 동안 미술관에서 작업해 완성한 유스케 아사이의 진흙 페인팅을 비롯해 애니메이션 드로잉 설치작업은 메시지보다 개인적 정서와 감수성에 충실하다. 옷감 위의 이미지를 날실로 해체한 아이코 데즈카, 야수와 인간의 구별이 어려움을 보여주는 유이치 요코야마, 볼펜과 잉크를 사용한 아야 와다의 드로잉은 일상과 내면에 대한 관찰이 깔려 있다.

서울의 전시 ‘양날의 검’은 ‘민주화’와 ‘세계화’의 물결 아래 성장한 1960∼80년대 출생 작가들을 주목했다. 변질과 회복의 열쇠를 지닌 공기를 이용한 이병호의 ‘숨쉬는 조각’, 사회적 대의를 중시하고 자신을 희생한 세대를 왜소한 영웅으로 부각한 최수앙의 조각, 비무장지대와 백두대간 풍경이 혼재된 이세현의 회화에는 개인사와 사회적 맥락이 뒤섞여 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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