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6>세 도시 이야기

  • 입력 2008년 7월 31일 02시 54분


◇세 도시 이야기-주홍빛 베네치아·은빛 피렌체·황금빛 로마/시오노 나나미 지음/한길사

《“투르크인이나 아랍인임을 알 수 있는 각양각색의 터번도 여기 베네치아에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리스어로 떠드는 뱃사람들 바로 옆을 독일어를 사용하는 상인들이 지나간다.”》

르네상스 대표 도시들의 ‘우아한 쇠퇴’

‘주홍빛 베네치아’ ‘은빛 피렌체’ ‘황금빛 로마’ 3부작은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르네상스의 여인들’ 등 인물 중심으로 르네상스기를 소개해 온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도시로 시선을 옮긴 작품이다.

16세기 초엽, 베네치아의 유력 귀족 가문 출신인 30대 남성 마르코 단돌로의 활약을 중심으로 황혼녘에 접어든 세 도시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6세기는 르네상스의 수혜자로서 유럽의 중심에 있던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내부 분열과 스페인, 프랑스, 오스만튀르크 등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들의 등장으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던 때.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베네치아 피렌체 및 로마라는 세 도시를 묘사해보고 싶었다. 우아하게 쇠퇴해가는 시기야말로 인간이 아니라 도시가 주인공이 되기에 어울리는 시기”라고 말했다.

사건의 시작은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이곳에서 발생한 의문의 자살 사건을 시작으로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알렉산드로 대공, 교황 파울루스 3세 등 16세기 지중해 세계를 움직이던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가 허구의 인물인 마르코 단돌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1부 ‘주홍빛 베네치아’는 베네치아 귀족 청년들의 우정과 베네치아를 둘러싼 오스만튀르크, 헝가리제국 등의 정략이 탄탄하게 펼쳐진다. 2부 ‘은빛 피렌체’는 스페인과의 관계를 두고 내분이 벌어지는 메디치 가문을 중심으로 피렌체의 쇠퇴 과정이, 3부 ‘황금빛 로마’는 주인공 마르코와 고급 창부 올림피아의 로맨스가 중점적으로 펼쳐진다. 각 권의 초반에 일어나는 의문의 죽음과 맞물려 벌어지는 추리 과정이 더해져 독특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던져준다.

여기에 ‘세 연인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로맨스가 두툼하게 덧입혀졌다. 베네치아 통령의 아들 알비제 그리티와 유부녀인 프리울리 부인의 사랑, 마르코와 올림피아, 교황의 아들 파르테세 공작 간의 삼각관계 등 각 도시를 배경으로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로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저자는 “인간이 아닌 도시가 주인공”이라는 목적을 놓치지 않는다. 스페인, 오스만튀르크, 헝가리제국과 세 도시 간에 얽힌 복잡한 국제 정치 관계를 비롯해 베네치아 첩보기관이 사용한 암호 통신, 피렌체의 재판과 처형법, 로마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작업 방식 등 정치 건축 사상 패션 등 당대의 복원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3부작을 읽고 나면 어느새 주홍빛 바탕에 금실로 성 마르코의 사자를 수놓은 국기가 지중해를 오가는 선박의 돛대에서 펄럭이던 시대의 베네치아, 두오모 대성당을 중심으로 붉은 물결이 펼쳐지는 피렌체, 그리고 위대했던 제국의 영화를 노래하는 하얀 대리석의 도시 로마의 골목골목을 훑은 느낌이다.

여행작가 오영욱 씨는 “지나다니는 슬픈 고양이에게도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 같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장소에 대한 상상력을 배가시키는 책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널리 알려진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보다 훨씬 읽기 편한 ‘추리소설’”이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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