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esign]글자가 웃고 울고 춤추고…정감이 송알송알

  • 입력 2006년 4월 3일 06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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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니터 손글씨가 내 마음

싸이월드는 지난해 8월 글꼴 서비스를 처음 도입했다.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일반 폰트 외에 손으로 직접 쓴 듯한 다양한 글씨체를 도입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에 따르면 하루 평균 글꼴 아이템을 구매하는 이용자는 약 2만 명. 이 회사의 신희정 과장은 “새로 업데이트된 글꼴이 인기가 많은 편”이라며 최근에는 ‘이수영체, MD쉬아별체, S헬로우 얄리체, Rix야옹이체’ 등이 구매 순위 상위에 있다고 전했다.

디자인 업계에서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죽죽 뻗어나가는 폰트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싸이월드에 입점한 폰트 디자인 업체마다 매달 3억∼5억 원의 수입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자인 업계가 추산하는 폰트 시장 규모는 60억 원대.

현재 출판 분야가 60%를 차지하고 있으나 지난해부터 웹이나 모바일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폰트에 이용자들이 도토리(싸이월드)나 은화(네이버)를 기꺼이 지불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폰트 디자인업체 폰트릭스는 ‘ㅇ’이 들어갈 자리에 ‘♥’나 ‘★’을 넣은 글꼴로 누리꾼들을 사로잡았다. 폰트릭스의 김원준 실장은 “싸이월드의 이용자 층은 10, 20대 여성”이라며 “글꼴을 부드럽게 하고 하트나 별 모양을 넣어 재미있게 만든 것이 이들의 감성에 어울리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글자로 정보만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감성과 느낌을 표현하는 추세도 뚜렷하다. 휴대전화기의 다양한 글꼴이 대표적인 사례. ‘스카이’ 휴대전화기에 광수체가 도입됐을 때, 아이가 손으로 쓴 듯한 귀엽고 부드러운 글꼴이 소비자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많은 휴대전화가 키드체나 구름체 등 다양한 서체를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출시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기에는 10개의 글씨체가 내장돼 있다. 삼성과 LG는 글꼴 내려받기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SK텔레콤은 다음 달부터 이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글꼴 디자인이 자기의 감성을 드러낼 수 있는 콘텐츠가 되기 때문이다.

○ 풍성해진 글꼴 시장

“글자는 밥과 같다”고 말해 온 글꼴 디자이너들은 명조와 고딕을 벗어나 밥상이 풍성해졌다고 말했다. 과거 인쇄출판용에만 한정돼 있던 글꼴은 웹과 모바일을 비롯해 기업 전용폰트, 방송 자막, 게임기로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고현정 조인성이 주연한 SBS TV 드라마 ‘봄날’에는 윤디자인연구소의 우체국체가 ‘일괄 사용’됐다. 드라마 타이틀과 웹 페이지에 들어가는 문구를 모두 이 글꼴로 통일했다. 드라마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글꼴이 쓰인 사례다.

최근의 글꼴 트렌드는 붓글씨 느낌이 나는 ‘캘리그래피’다. 부담이 없고 정겨운 손글씨로 쓴 배상면주가의 ‘산사춘’, SK텔레콤의 광고 캠페인인 ‘끌리면 오라’, 태평양의 ‘라네즈 핫 핑크’ 등이 있다. 광고와 간판을 눈여겨보면 ‘생각보다 손글씨 맛이 나는 글꼴이 많네’ 하고 느끼게 될 것이다.

글꼴의 ‘작명’도 디자이너들이 신경을 쓰는 대목. 폰트릭스의 김 실장은 “야옹이체는 글꼴 자체에 고양이 모양이 들어간 것은 아니나 고양이 같은 장난기와 고양이의 수염 같은 느낌을 주는 요소들이 포함돼 있다”며 “이용자들이 3, 4글자로 된 글꼴 이름에서 글꼴의 이미지와 느낌을 직관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디자인연구소도 인쇄물용 폰트를 웹이나 모바일에 적용시킬 때는 이름을 바꾼다. 윤고딕체는 예쁜 고딕으로 꼬맹이체는 윤써니체로 명명하는 식이다. 사용 환경 및 이용자를 고려해 써니하트, 써니러브 같은 경쾌한 이름을 선호하는 것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윤디자인연구소 박윤정 실장

2000년 웬 글꼴 디자인? 2006년예쁜 폰트 주세요!

“글꼴 디자이너요? 글꼴도 디자인합니까?”

윤디자인연구소 박윤정(37·사진) 실장은 이런 질문을 자주 받곤 했다며 웃었다.

이 회사 영업전략팀 강진희 과장의 경험담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영업하러 나가면 ‘폰트를 누가 써요. 디자이너들이나 쓰는 거지’ 하고 면박당하기 일쑤였어요. 그러다가 2004년부터 웹 폰트를 구매하고 싶다는 전화가 한두 통씩 왔죠. 지난해 하반기부터 싸이월드 등이 폰트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요.”

요즘은 소비자가 직접 전화하기도 한다. 최근 박 실장은 한 할아버지에게서 “성경처럼 글자 크기가 작아도 잘 보이는 폰트를 개발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글꼴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글꼴도 디자인이고 콘텐츠다. 윤디자인연구소의 모토는 ‘감성이 묻어나는 폰트’다. 컴퓨터 같은 기기는 차가운 테크놀로지의 전형인데, 이용자들이 그 안의 글자에서 인간의 감성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말 윤디자인이 ‘회상체’를 내놨을 때 놀랍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박 실장은 회상체를 우둘투둘한 질감을 표현한 첫 서체로 꼽았다.

기존 명조나 고딕체의 틀에서 벗어난 글꼴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회상체는 아련한 추억처럼 글꼴에 인간의 감성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이어 손글씨체(스크립트)인 봄 여름 가을 겨울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 시리즈는 ‘올해의 굿 디자인상’도 수상했다.

윤디자인이 보유한 서체는 700여 종. 웹이나 모바일용 폰트만 150여 종에 이른다.

지난해부터 웹 서비스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폰트 서비스에 대해 그는 “디자이너만 폰트를 찾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새 글꼴을 만드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디자이너 한 명이 6∼9개월은 꼬박 투자해야 하나의 새 폰트가 탄생한다. 윤디자인의 폰트 디자이너는 모두 7명. 작업량이 많아 늘 외주 디자이너를 쓴다. 박 실장은 “폰트가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오는 측면도 있다”며 “글자는 글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재미있으면서도 가독성에 무리가 없어야 좋은 폰트가 된다”고 지적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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