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177>關에 譏而不征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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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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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王道政治(왕도정치)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用人(용인, 사람을 등용함)의 문제였고, 둘째는 상업의 활성화 방안이었다. 셋째가 교통과 물자 유통의 문제이다.

關은 본래 문에 지르는 빗장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각 지역의 경계에 설치해서 오가는 사람과 물품을 검사하는 關所(관소)를 가리킨다. 譏는 譏察(기찰)로, 사람이나 물품을 檢査(검사)한다는 뜻이다. 譏而不征은 오가는 사람이나 물품 가운데 이상한 것이 없는지 검사만 하고 통행세나 관세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난 호에 나왔듯이 征은 세금을 걷는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통행세나 관세를 걷는 것을 가리킨다. 또 부정사 不은 ‘ㅈ’ 발음의 앞에 쓰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 다음의 동사와 관용적인 어휘를 이루지 않으므로 ‘불’이라고 발음한다. 旅는 본래 씨족의 깃발을 들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글자인데, 뒤에 旅團(여단)과 같이 군대의 한 무리를 가리키거나 旅行(여행)과 같이 멀리 가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여행하는 사람인 旅客(여객)을 가리킨다. ‘天下之旅, 皆悅而願出於其路矣’는 앞서 나온 ‘天下之士, 皆悅而願立於其朝矣’나 ‘天下之商, 皆悅而願藏於其市矣’와 짜임이 같다.

맹자는 ‘梁惠王(양혜왕)·하’ 제5장에서도 주나라 文王(문왕)이 岐(기) 땅을 다스릴 때의 王政(왕정, 왕도정치)에 대해 말하면서 ‘關市不征(관시불정, 관문과 시장을 기찰하기만 하고 세금을 징수하지 않음)’을 거론했다. 또 ‘禮記(예기)’의 ‘王制(왕제)’편에서도 ‘市에 廛而不稅하고 關에 譏而不征이라’고 했다. 옛사람들은 갖가지 제도가 군주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민간의 생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매매를 활기 있게 하고 교통 및 물자유통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현대사회의 갖가지 제도와 법령은 결코 소수의 탐욕을 충족시키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제도와 법령을 악용하는 자가 있어, 그 탐욕은 때때로 秦之求無已(진지구무이)의 양상을 띠기까지 한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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