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이운재 vs 김병지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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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골키퍼는 외롭다. 앞엔 10명의 동료 선수가 있지만 뒤엔 아무도 없다. 오직 그물망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골키퍼는 늘 불안하다. 스트레스로 머리칼이 빠지고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세계 축구 사상 가장 뛰어난 골키퍼는 옛 소련의 ‘흑표범’ 야신이다. 그는 42세까지 선수생활을 하며 150번도 넘게 페널티킥을 막아낸 전설적 골키퍼다. 하지만 그도 경기에 나설 때마다 불안과 초조감에 시달렸다. 그는 늘 보드카 한 잔을 마시고 담배 한 대를 피운 뒤 경기에 나갔다.

K리그 최고 골키퍼로 꼽혔던 러시아 출신 신의손(46·본명 샤리체프·현 경남FC 코치)은 말한다. “골을 먹으면 지든 이기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오전 4시나 돼야 겨우 잠이 든다. 필드 선수들의 실수일지라도 일단 골을 먹으면, 그 순간 모든 것이 골키퍼의 책임이 된다.”

국가대표팀 수문장 이운재(33·수원삼성)가 23일 K리그 부산과의 경기에서 4골이나 먹었다. 이운재가 K리그에서 4골이나 먹은 것은 5년 만이다. 물론 골은 골키퍼가 아무리 잘한다고 하더라도 팀 수비가 부실하면 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날 이운재가 먹은 골 중엔 2002 월드컵 당시의 이운재라면 막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전반 22분 부산 안영학의 왼발 중거리 슛은 이운재가 방향을 정확히 잡고 나와 잡히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을 맞고 튀어 나가는 바람에 골을 내주고 말았다. 순발력이 조금만 빨랐다면 정확히 잡을 수도 있었다. 전반 38분 부산 뽀뽀의 세 번째 골도 이운재가 페널티에어리어 밖으로 중도 차단을 시도하다가 뽀뽀에게 돌파를 당하는 바람에 허용한 것이다. 보는 이에 따라 이운재의 판단미스로 볼 수 있지만, 필자는 이운재의 순발력이 뽀뽀의 스피드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무래도 이운재의 순발력이 예전보다 못한 것 같다. 이운재는 2001년 컨페더레이션컵 축구 한국-프랑스전에서 5골을 먹은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골키퍼를 시작한 뒤 5골이나 먹은 것은 처음이다. 정말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 자신이 한심했다. 얼이 빠져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도 몰랐다. 프랑스가 진짜 잘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것은 축구 환경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지도를 받는데 우린 그렇지 않다. 또 그들은 어릴 때부터 축구를 즐기면서 하는데 우린 그렇지 않다. 즐기면서 해야 실력이 부쩍부쩍 느는 법인데….”

그렇다. 게임은 즐겨야 한다. 신바람이 나야 신들린 듯한 플레이가 나온다. 그런데 이운재는 요즘 뭔가에 쫓기는 것 같다. 옛날의 침착함이 많이 사라지고 우왕좌왕하는 경우를 본다. 왜 그럴까. 혹시 라이벌 김병지(36·FC서울)의 대표팀 복귀설에 마음이 흔들린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만큼 요즘 김병지는 펄펄 날고 있다. 올 시즌 K리그 성적만 봐도 그렇다. 둘 다 똑같이 10경기를 치렀지만 이운재는 7실점인데 비해 김병지는 4실점에 불과하다. 여기에 정기동 대표팀 골키퍼코치조차 “현재로선 누가 월드컵에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김병지도 독일에 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의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고삐를 죄고 있다. 이운재가 느낄 압박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김병지는 자신만만하다. 공공연하게 “독일 월드컵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2002 월드컵에서 이운재에게 밀려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대신 벤치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응원했다. 그러면서 속으론 울었다. 그만큼 그는 성숙해졌다. 어쩌면 그는 독일 월드컵 멤버에 뽑히더라도 또다시 이운재의 백업요원으로 머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는 당당하다.

“2002 월드컵 독일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는 올리버 칸(36·바이에른 뮌헨)이었지만, 2006 독일 월드컵의 독일대표팀 주전은 당시 벤치멤버이던 옌스 레만(36·아스널)이다. 그래도 칸은 ‘자만심을 버리고 백업요원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칸의 자세는 선수로서 본받아야 할 귀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비록 내가 대체요원으로 발탁되더라도 대표팀에서 경쟁하다 보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누가 독일 월드컵 한국대표팀 주전 골키퍼를 꿰차게 될까. 그것은 앞으로 남은 기간의 ‘땀과 눈물’에 달려 있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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