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프로젝트21]'기회의 땅' 뉴욕…꿈을 먹고 산다

  • 입력 2000년 9월 20일 19시 25분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인 미국 뉴욕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취재 보도해 온 ‘맨해튼 프로젝트 21’이 이번 회로 끝난다. 에필로그를 겸해 맨해튼 문화현장의 이야기 3건을 옴니버스로 엮는다.

<편집자>

#1

◇美 전역서 몰려온 배우-가수 지망생 밑바닥 생활하며 스타탄생 꿈끼워◇

대중스타 지망생들에게 뉴욕은 ‘꿈의 도시’다. 재능만 있다면 스타로 클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의 ‘벨고’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서빙하는 흑인청년 에간(25)도 2년전 스타의 꿈을 찾아 고향 매사추세츠를 떠나왔다. “고향 극단에서 여러 연극에 출연해서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진짜 프로가 되고 싶었다.”

평일 낮에 6시간씩 일하고 밤에는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에 올릴 작은 연극을 연습하고 틈틈이 대본도 쓴다. 조연급인 그의 꿈은 제2의 조너선 라슨이 되는 것. 뮤지컬 ‘렌트’로 일약 스타가 되기 전 라슨도 뉴욕의 게이바 웨이터였다.

‘뉴욕 드림’을 쫓는 신인 중 많은 수가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일한다. 뉴욕대 연기학과나 영화과 학생을 가리켜 ‘미래의 웨이터/웨이트리스’이라고 농담하는 것도 이런 뜻이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와 오디션 비용을 번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자주 찾는 곳에서 ‘눈도장’을 받기위한 목적도 없지 않다. 실제 뉴욕대 영화학과 학생들이 실습용으로 찍는 영화에 무료로 출연하겠다는 배우들도 넘쳐난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딱 하나. 영화를 복사한 비디오테이프다. 제작자들에게 자신의 연기를 보여줄 경력으로 쓰려는 이유다.

영화 ‘코요테 어글리’에서 보듯 가수 지망생들도 마찬가지다. ‘팝의 여왕’ 머라이어 캐리도 한 클럽 웨이트리스를 하다 픽업됐다.

이들은 커리어에 도움이 되면 보수가 없어도 일을 한다.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에서 매일 200여개의 무대가 열리는 ‘보이지 않는 힘’은 바로 이런 스타를 향한 꿈인 것이다. 때문에 ‘뉴욕 중독자’가 양산된다. 뉴욕은 달콤한 꿀과 치명적인 독이 섞여 있는 곳이다.

#2

◇NYT선정 '인터넷 동화속 영웅' 코즈모닷컴 공동대표 조지프 박◇

맨해튼 34번가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반바지 차림에 스쿠터를 몰고 나타났다. 첫 눈에 퀵서비스 배달원 차림의 그가 과연 뉴욕타임스에서 ‘잭과 콩나무라는 인터넷 동화속 영웅의 한명’으로 뽑은 그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무럭무럭 들었다.

“많은 사람이 제가 엄청난 부자인 줄로 압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집 한 채는커녕 차도 한 대 없는걸요.”

조지프 박(28). 3세에 미국으로 건너온 한인 1.5세로 인터넷으로 주문받으면 책과 비디오테이프 등을 어디든 1시간안에 배달한다는 아이디어 하나로 아마존과 스타벅스 등으로부터 2억5000만달러를 유치한 코즈모닷컴의 공동대표. 미국의 신경제 전문지 인더스트리 스탠더드가 미국 인터넷 경영인 파워 21명으로 뽑은 벤처신화의 주인공.

하지만 요란한 타이틀 뒤에 숨은 이는 정작 세련된 양복을 빼입고 스포츠카를 모는 신경제가 낳은 ‘리치 키드’가 아니었다. 투지에 불타는 권투선수를 떠올리게 했다. 98년 2명으로 시작한 종업원수가 3000명까지 늘어났지만 최근까지도 손수 배달에 나서던 그는 배달도중 택시에 치여 앰뷸런스에 실려가면서도 회사로 연락, 1시간내 배달약속을 지켜냈다.

“돈보다는 성취감 때문에 합니다. 청춘을 담보로 제 꿈을 걸고 도박하는 기분입니다. 수중에 돈이 당장 들어오지 않아도, 잠 한숨 안자도 너무 재미있어요.”

로스앤젤레스 골드먼삭스에서 연봉 10만달러를 받는 안정된 생활을 그만두고 뉴욕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했다.

“우선은 뉴욕대 출신이기 때문에 사업구상 때부터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는 뉴욕을 염두에 뒀죠. 물론 성공하려면 미국의 한복판인 뉴욕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도 한몫을 했지만요.”

1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받았다.

“뉴욕에 있으면 도처에서 성공의 냄새가 풍겨납니다. 제가 유리한 점이 있다면 아직 젊고 그 냄새들이 미칠만큼 좋다는 것뿐입니다.”

#3

◇대형 출판사가 책시장 장악 뉴요커들 요즘 고전 다시 읽기 붐◇

랜덤 하우스와 하퍼 앤 콜린스 등 미국의 대형출판사들이 몰려있는 맨해튼. 뉴욕 출판계는 지금 구심력과 원심력이 동시작용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미디어대기업의 인수합병으로 독자적 출판사들이 사라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e출판의 등장으로 작가가 출판사의 입김에서 자유롭게 독자와 직접 대면할 길이 뚫렸기 때문이다.

타임워너의 해외작품 스카우트담당인 마리아 켐벨에게 이런 소용돌이속에서 뉴욕출판계의 흐름을 들어보았다.

―메이저 출판사 중심의 수직계열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많은데.

“메이저출판사의 덩치가 갈수록 커지면서 중간수준의 출판사는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출판시장이 베스트셀러 중심의 메이저 시장과 그 틈새를 파고든 마이너 시장으로 양분되고 있다.”

―e출판의 등장은 그런 메이저 중심의 관행을 깰 대안이 될 것으로 보는가.

“말만 무성하지 전망은 뚜렷하지 않다. e출판도 결국 출판사를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 개인출판이 가능하더라도 스티븐 킹이나 제임스 엘로이(LA컨피덴셜의 작가) 등 슈퍼스타급 작가에게만 해당할 것이다.”

―최근 뉴요커들의 새로운 독서경향이 있다면.

“두 가지 경향이 두드러진다. 하나는 어드벤처물의 인기고 다른 하나는 고전 다시읽기다. 야외활동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거리의 패션이 스포츠룩으로 바뀌면서 독서시장도 ‘Perfact Storm’이나 ‘In the Heart of the Sea’, ‘Into the Air’ 등 논픽션 어드벤처물이 인기다. 셰이머스 히니가 현대영어로 번역한 ‘베어울프’같은 초고전이 인기를 끌면서 ‘돈키호테’가 새로 번역되는 등 고전붐도 한창이다.”

―가장 각광받는 작가를 꼽으라면.

“올해 가장 주목하는 작가는 ‘A Heartbreaking Work of Staggering Genius’의 작가 데이브 에거스다. 그는 30대인데 19세에 부모를 병마로 잃고 다섯 살위 형과 네살위 누나 그리고 8세 동생과 함께 삶을 헤쳐온 자화상을 풍자와 반어의 논픽션으로 그려냈다.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에서 그는 일종의 스타일 혁명을 일으켰다.”

―디지털시대 종이책의 운명에 대한 전망은.

“디지털시대에 종이 소비량이 오히려 급증했듯이 미국인들의 종이책 독서량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책판매량은 전년도에 비해 4.3%가 증가했다. 지난해 갤럽의 여론조사에서도 1년에 한권 이상 독서하는 사람들이 90년의 81%에서 84%로 증가했다. 종이책의 생명은 이어질 것이다.”

<뉴욕=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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