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왕조의 꿈 태평서곡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0일 11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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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국악원의 대표 브랜드 공연으로 자리매김한 '왕조의 꿈 태평서곡'은 묵직한 여운을 줬다. 민속악의 변화무쌍하고 깊은 시김새(꾸밈음)도, 역동적인 춤사위도, 극적인 스토리도 없는 이 무미건조한 공연엔 '재미'라는 잣대로 잴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아마도 정성일 것이다. 조선 정조대왕의 어머니를 향한 고마움, 이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꼼꼼히 사료로 남긴 선조의 정성, 이를 200년이 지난 지금 현대인에게 전하고자 역량을 총집결해 무대화한 국립국악원의 정성이 녹아 있었다.

평일인 14일 저녁 공연인데도 800여 석 규모의 국립국악원 예약당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부부, 늙은 부모를 모시고 온 부부 등 가족단위 관객이 상당수였다. 조선 궁중의 가무악이 일반 대중을 끌어 모으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국립국악원 개원 50주년을 기념해 2001년 초연한 이 공연은 1795년 화성(華城·수원)에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연 회갑연 '봉수단진찬(奉壽堂進饌)'을 꼼꼼한 고증을 거쳐 현대의 무대 문법으로 재현했다. 당시 음악이나 무용뿐만 아니라 의복과 잔칫상 음식까지 실감나게 복원됐는데 이는 상세한 기록 덕분이다. 조선왕조는 행사 내용을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라는 1300여 쪽 책에 기록했다. 잔치의 구체적인 내용뿐 아니라 인원과 사용한 비용까지 적었다.


공연 시작 전 프로젝트 영상을 곁들여 여성 내레이터가 혜경궁 회갑연이 열리게 되기까지의 역사적 맥락을 관객에게 전했다. 이를 통해 관객은 혜경궁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들인 정조가 왜 어머니를 위해 성대한 회갑연을 열었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왕실의 연회는 떠들썩한 잔치판이 아니라 예로 시작해 예로 끝나는, 극도로 절제된 행사였다.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아쟁 등으로 연주하는 서곡 여민락을 포함해 경풍년, 수제천 등 공연에서 들려준 연례악들은 궁중 음악의 절제미를 잘 보여줬다. 일관되게 장중한 연주에 느리면서 우아한 무용이 더해져 '정중동의 미학'을 구현했다. 외빈 대표가 자궁(왕의 어머니)에게 세 번째 술잔을 올릴 때 수룡음 반주에 맞춰 펼쳐지는 '학.연화대무'는 무대 위 연꽃 조형물의 꽃잎이 활짝 열리며 여성 무용수를 토해내고 4마리의 학이 춤을 춰 공연에서 가장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회례연 참석자들이 제자리로 이동하는 '취위'로 막을 연 공연은 이들이 연회장에서 모두 퇴장하는 '퇴위'로 끝난다. 혜경궁 역을 맡은 김광숙 씨(중요무형문화제 29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는 커튼콜 때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10일부터 18일까지 8번의 공연에 헤경궁 역은 매번 바뀌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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